'전쟁'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3/03/30 집쥔 부카니스탄이 전시상황 포고를 했는데,
  2. 2012/02/25 집쥔 뜬금없이 챈슬러스빌 전투
  3. 2012/02/22 집쥔 카란세베스 전투
  4. 2011/08/31 집쥔 보급전의 역사 (2)
  5. 2010/03/05 집쥔 제너럴 패튼 (7)
  6. 2008/12/30 집쥔 이스라엘 vs 하마스 (2)
  7. 2008/04/21 집쥔 사 볼 책 많구나. (2)
93년 서울 불바다때만 해도 라면이 엄청 팔렸다고 들었는데,
이건 좀 심하게 평안한 듯도 싶습니다마는.
하긴 현역들이 긴장하면 됐죠 예비군 끝난 나까지 부르겠냐... -_-

北 "남북관계, 전시상황 돌입"

그런데 되도 않게 미국을 핵타격하겠다고 떠버리는데,
대화해달라고 애원하는 츤데레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뭘가요.
2013/03/30 09:24 2013/03/30 09:24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828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828

엔하에서 놀다가 충동적으로 끄적여본 글입니다.
잭슨의 대규모 우회기동이 늘 감탄하곤 하던 포인트였는데,
다시보니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니 쫌 약하군요.

1863년 5월 1일~6일 즈음에 챈슬러스빌 지역에서 13만3868명의 북군(포토맥군)과 6만892명의 남군(연방군)이 맞붙은 전투이다.

이 근처는 1862년 프레드릭스버그 개울가에서 남군의 돌담에 돌진한 북군이 도륙당한 프레드릭스버그 전투가, 이후 북군 대장이 율리시스 그랜트로 교체된 다음 리를 추격하다가 부하가 하도 많이 죽어 그랜트를 밤중에 울게만든 스팟실배니아 전투가 1864년 벌어진 나름 죽음의 땅이다.

새 지휘관 후커는 프레데릭스버그 전투 이후 망가진 북군을 북부 자원의 힘으로 추스리고,

위와 같이 다수의 병력으로 [[로버트 리]]의 남군을 포위해 박살내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전투 전 사열하러 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의기양양하게, '언제' 남부의 수도를 점령하느냐는 문제만 남았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에 링컨 왈, "그런데... 나는 암탉이 가장 똘똘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놈은 알을 낳기 전에는 울지 않으나 말이오." 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북군은 계획대로 기동하여, 세지윅의 4만 군대는 4월 29일 밤에, 후커의 7만 군대는 4월 30일에 남군의 저항이 없는 가운데 강을 건너, 양쪽에서 남군을 포위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였다.

첫 총알교환은 5월 1일 11시 시작되었는데, 교전 시작 후, 후커는 리의 명성에 쫄았는지, 현재 위치를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가 방어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을 내려버렸다!

당시 2군단장 카우치 장군은 후일, "후커는, '그동안 우리는 성공적으로 기동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숲 속에 들어가 방어전투를 통해 그 동안의 성공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곁을 떠나면서 이 사람이 분명히 실성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라고 회고하였다고 한다.

리는 후커의 꼬락서니를 보고 상대의 생각을 간파하여, 세지윅 쪽 4만 병력앞에 얼리의 1만1천명만 남겨 견제하도록 하고, 6월 2일, 스톤월 잭슨에게 2만8천 병력으로, 북군의 우측면으로 19km를 우회기동하여 측후방을 기습하도록 하면서 그 동안 1만3천으로 후커의 7만 북군을 견제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였다.

잭슨의 기동은 성공하였으나, 17시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북군에게 치명타를 먹이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세지윅 휘하의 레이놀즈 군 2만명이 옮겨와서, 북군은 거의 집중된 2배의 병력으로 남군의 두 부대를 박살낼 기회를 얻었지만, 전투중에 남군의 포탄에 사령부가 피격을 당해 부상을 입은 후커는, 지휘권도 이양하지도 않고, 7만 6천명의 병력을 가지고 가만히 방어만 하고 앉아있으면서, 동쪽 2만의 세지윅 군에게 진격할 것을 명하였다.

6월 3일 세지윅 군이 프레데릭스버그 돌담을 돌파하고 얼리 군을 밀어내며 전진하자, 리는 맥그로우 사단을 급파하여 세지윅군의 전진을 지연시켰다.

후커가 움직이지 않을 것을 확신한 리는 6월 4일 앤더슨 사단을 추가로 세지윅 쪽으로 보냈고, 얼리 사단을 포함한 세 사단에 포위된 데다가 후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세지윅은 5월 5일 해뜨기 전 강을 건너 철수하였고,

이를 본 후커는 일부 부하군단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월 5일 밤동안 철수하였다.

이후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후커는 잘리고 후임으로 군단장이던 미드가 새 북군 사령관이 되었다.

리는 절반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두 배의 상대방을 포위하는 화려한 기동과 놀라운 공세능력을 보여주었다. 2일 잭슨의 우회기동은 남북전쟁 최고의 전술기동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사상자는 북군 1만7197(1606명 사망), 남군 1만3303(1665명 사망)으로, 병력이 모자란 남군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큰 피해는, 2일의 기습전 와중에, 스톤월 잭슨 장군이 아군의 오발에 부상당하여, 10일 사망한 것이었다.

잭슨은 과묵한 성격에 리의 명령을 잘 알아듣고 저돌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남군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장군으로,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그가 죽지 않고 게티스버그 전투까지 가서, 롱스트리트 위치에 있었더라면, 7월 3일 전투에서 북동쪽에서 이월의 포성이 들리지마자 주저없이 피켓 사단을 돌진시켰을 것이고, 그렇게만 되었더라만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군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라는 게 만약을 달고 나오곤 하는 떡밥이다.

전쟁터는 1927년 미국의회의 허가를 얻어 프레드릭스버그와 스팟실배니아 국립군사공원으로 조성되었다.

2012/02/25 23:54 2012/02/25 23:54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684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684

카란세베스 전투

Interest/history 2012/02/22 23:56 집쥔
삘받아서 영문위키 내용을 개발세발로 바꿔써본 글입니다.

예전에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라는 책에서 본 내용인데,
이 책, 러일전쟁도, 아라스전투도 오류가 있던데, 오마이갓 이것도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니...

1787년~1791년 사이에 벌어진 오스트리아 - 터키 전쟁 사이에 일어났던 에피소드이나, 인정되는 첫 역사적 기록이 사태가 벌어진 뒤 59년 후라는, 시간이 꽤 흐른 뒤 작성되었고, 정확도도 신뢰성이 높지 않아, 검증이 모호한 사건이다.

요는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군이, 오토만 제국군을 정찰하던 도중에, 대략 1788년 9월 17일, 실수로 대규모 팀킬을 하게 된 사건이다. 덕분에 오스만 제국군은 간단히 도시를 접수하였다.

그날의 오스트리아 군은 대략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오늘날 루마니아에 있는, 카란세베스 마을 주변에 캠프를 구축하였다.

후사르 분견대의 선두집단이 근처에 오토만 군이 있는지 정찰하려고, Timiş 강을 건넜다. 오토만 군은 보이지 않았고, 기병대(= 후사르)는 술을 마시기 위하여 루마니아 거주민 집단을 찾았다. 기병대는 시냅스 술을 사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 뒤, 소수 보병들이 강을 건넜고, 기병들을 보자 마시던 술을 나눌 것을 요구했으나, 기병들은 거부하였고, 술통 주변에 임시요새까지 꾸렸다. 논쟁이 격해지던 와중, 누군가가 총을 한 발 쏘았다.

즉시, 기병대와 보병대는 서로 치고 받기 시작하였고, 이 와중에, 어떤 보병이 "투르크! 투르크!"라고 외쳤다. 이를 들은 보병과 기병대는 이를 오스만군의 기습이라고 생각하여 정신없이 도망하였다. 상황은 장교들때문에 더욱 나빠졌는데,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군대였는데, 독일어를 쓰는 장교들은 "멈춰!" 라는 뜻으로 "Halt!"를 외쳤으나, 독일어를 모르는 다른 민족의 군인들에게는 저 명령이 발음 그대로 들리다보니, "알라!"로 들려버려 혼란은 더욱 증폭되어버렸다.

기병대가 본진으로 후퇴하자, 군단 사령관은 오토만 기병대의 기습으로 판단하였고, 포격을 명령하였다. 그 때, 전 숙영지는 전투소리에 깨어나, 어떤 상황인지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정신없이 도망해버렸다. 군단병들은 그림자만 보아도 오토만군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군을 쏘아버렸다. 이 혼란상은 커져,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요제프 2세까지, 그의 탈것을 작은 시냇물에 처박아버릴 정도였다.

이틀 뒤, 카란세베스에 도착한 오토만 제국군을 맞이한 것은, 대략 1만구의 시체와 부상병들이었다.

아래는 오해마시라고 영문위키 내용 그대로 긁어옴.

The Battle of Karánsebes (Romanian: Caransebeş, Turkish: Şebeş Savaşı) is a likely apocryphal episode in the Austro-Turkish War of 1787-1791. It is impossible to verify[citation needed] due to the available historical sources being written long after the battle, and its historical accuracy is in doubt.

Published sources

The earliest major source detailing this battle is from "Geschichte Josephs des Zweiten" by A.J. Gross-Hoffinger, written 59 years after the battle's supposed occurrence, and most authors tend to cite this account. The earliest source for this battle was from History of the eighteenth century and of the nineteenth till the overthrow of the French empire,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mental cultivation and progress, which was published in 1843, 55 years after the incident. This source refers readers to the "Austrian Military Magazine of 1831" to find a more complete account of the battle: "A detailed account of the singular story of this night-march and its consequences does not appear to us to belong to the province of general history ; it will however be found both authentic and complete in the 'Austrian Military Magazine of 1831.'"

The battle

Different portions of an Austrian army, which was scouting for forces of the Ottoman Empire, fired on each other by mistake, causing a self-inflicted disaster. The battle took place on the evening of 17 September 1788. Ottomans were victorious and captured the city.

The army of Austria, approximately 100,000 strong, was setting up camp around the town of Karánsebes (now Caransebeş, in modern Romania). The army's vanguard, a contingent of hussars, crossed the Timiş River nearby to scout for the presence of the Ottoman Turks. There was no sign of the Ottoman army, but the hussars did run into a group of Romani, who offered to sell schnapps to the war-weary soldiers. The cavalrymen bought the schnapps and started to drink.

Soon afterwards, some infantry crossed the river. When they saw the party going on, the infantry demanded alcohol for themselves. The hussars refused to give them any of the schnapps, and while still drunk, they set up makeshift fortifications around the barrels. A heated argument ensued, and one soldier fired a shot.

Immediately, the hussars and infantry engaged in combat with one another. During the conflict, some infantry began shouting "Turcii! Turcii!" (Romanian for "The Turks! The Turks!"). The hussars fled the scene, thinking that the Ottoman army’s attack was imminent. Most of the infantry also ran away; the army comprised Italians from Lombardy, Slavs from the Balkans, and Austrians, plus other minorities, many of whom could not understand each other. While it is not clear which one of these groups did so, they gave the false warning without telling the others, who promptly fled. The situation was made worse when officers, in an attempt to restore order, shouted "Halt! Halt!" which was misheard by soldiers with no knowledge of German as "Allah! Allah!".

As the cavalry ran through the camps, a corps commander reasoned that it was a cavalry charge by the Ottoman army, and ordered artillery fire. Meanwhile, the entire camp awoke to the sound of battle and, rather than waiting to see what the situation was, everyone fled. The troops fired at every shadow, thinking the Ottomans were everywhere; in reality they were shooting fellow Austrian soldiers. The incident escalated to the point where the whole army retreated from the imaginary enemy, and Holy Roman Emperor Joseph II was pushed off his horse into a small creek.

Two days later, the Ottoman army arrived. They discovered 10,000 dead and wounded soldiers.

2012/02/22 23:56 2012/02/22 23:56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681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681

보급전의 역사

Book/역사 2011/08/31 23:50 집쥔


다루는 소재가 독특하여,
전부터 원서를 사볼까 말까 사볼까 말까 했던 책인데,
어느새 번역본이 나왔더군요.
그래서 18개월이 지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질러버렸습니-_-다.

분량에 비해 책값이 쫌 비싸긴 한 것 같고,
(이스라엘은 별로라) 히브리대라는게 쫌 거시기하기는 하고,
서평을 보니,
자료 다루는 데 어느 정도 편견이 작용한 것 같아,
감안하고 읽어야 하는 점은 있습니다마는,
일단 소재가 독특하여 먹고 들어가는 점수가 많고,
여하튼 술술 잘 읽히더군요.

마 소감이라면,
와 이렇게 오래까지 보급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었구나.
라는 생각이 압도적이군요.
- 1차세계대전까지라니
전쟁은 정말로 어려운 거구나. 라는 생각.

뱀다리)
뇌이바에는 수치로만 가득찬 지루한 책이라는 서평이 하나 있던데,
술술 잘만 읽히던데-_-a
2011/08/31 23:50 2011/08/31 23:50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620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620

제너럴 패튼

Book/역사 2010/03/05 18:10 집쥔
초반부에 가족사 이야기 나올때 순간 지루하여 한동안 처박아두었다가,
읽을 책이 거의 떨어져 찾아 꺼내 읽었습니다.
볼만합디다.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망상끼도 있으면서,
말이 드럽기는허나 명분이고 나발이고 살아남는게 최우선인 전쟁터에서는 틀린말은 아니며,
드러운 입과 튀는 쇼맨쉽마저도 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한 본능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면을 위해서는 타협할 줄도 아는,
능력은 출중하고 최전선에서 솔선수범하는 존경할만한 꼴통이라고 대충 정리가 되어,

예전에는 "기름 떨어질 때까지 달리기"만 하는 무대뽀 용장정도로 생각되었었는데,
다시 곱씹어보니 단순한 맹장 수준이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면 야전에서는 미군의 탑이랄까.
독일 국방군의 만슈타인급이랄까, 에이스를 꼽는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영국군에서는... 몬티는 드러난 삽질이 너무 많아 약하고 다른 인물은 잘 모르겠네요.



어록중에서는 영화 서두에서 나오던,

Now I want you to remember that no bastard ever won a war by dying for his country. You won it by making the other poor dumb bastard die for his country.
나라를 위해서 죽어버리는 놈들은 필요없다.
그딴 순국의 명예는 적군놈들한테나 주어버리라지.

라는 문장과,

전쟁이 끝나고 20년 후 제군들은 손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얘야 할아버지는 조지 패튼이라는 빌어먹을 자식과 그의 3군과 함께 돌격했단다'라고."

라는 문장이 맘에 듭니다. 전쟁에서 이루어야 할 최우선과제를 가식없이 표현했달까요.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오스프리 서적을 읽어보니
솔직히 참전한 미국 장군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아보이던데,
살아만 있었다면 로비를 해서라도 전쟁터로 달려와서
제대로 한 건 해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아쉽기도.
- 일본천황 더글라스와 싸웠을테니 안될라-_-나.

아,
웬만한 번역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 책의 번역은 거의 최악입니다.
주어는 뭔지... 어디서부터 끊어읽어야 하는지... 따옴표는 어따 팔아먹었는지...
2010/03/05 18:10 2010/03/05 18:10
TAG ,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7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421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421

이스라엘 vs 하마스

Gossip 2008/12/30 12:25 집쥔
생각컨데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둘 다 노린 전쟁같고...

이스라엘·하마스 모두 전쟁 원했다?

일단 전 세계를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wall street의 유태인들 생각이 나서,
이번 전쟁은 특히나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여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하마스 동정하고픈 생각도 별로 안 드네요. (도발한 게 보이니말입니다)

여튼 이스라엘의 전투 목적은 하마스를 반 죽여놓고 빠져나오는 것이겠죠.

저런 동네 살지 않아 죽을 걱정 안 해도 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2008/12/30 12:25 2008/12/30 12:25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231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231

사 볼 책 많구나.

Book/Gossip 2008/04/21 11:45 집쥔
얼마 전에 internet 서점을 뒤져보다가, 카트의 대기목록에 한 묶음 쌓아놓게 되었습니다.
1950인천 여고생9 1973속죄의날
루쿠루쿠8 금융제국JP모건 사키3
BC216칸나이 키미키스2 1940불량국
건스미스4 합스부르크제국문화사 그래도마을은돌아간다2
독소전쟁사 이누가미테루4 호치민
베르메르 자살토끼 보티첼리
...등등...

한 달에, 제휴카드 포인트가 쌓이는, 3만원어치씩 사 보는데, 얼마나 걸리려는지...
만화책은 또 어설프게 미루다가는 절판되어버리니 더욱 신경쓰이고말이죠...
게다가 어느 새 Osprey series나 Glantz의 책들이 완역되 나온다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절로 들게 만들더군요.

질리지도 않는 망상이지만 돈만 정도 이상 넉넉하면 심심하지는 않은게 세상같네욥.
2008/04/21 11:45 2008/04/21 11:45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battleship.ibbun.com/tt/rss/response/1094

댓글+트랙백 ATOM :: http://battleship.ibbun.com/tt/atom/response/1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