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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2 집쥔 독일제국해군 순양전함 본 데르 탄(SMS Von Der Tann) (10)
글세, wikipedia를 이런 식으로 글바꿈한 글 정도밖에는 적어볼 여력이 없습니다.
TOEIC 860점을 받아야 하는데 -200점 수준이라서 큰일입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개 페이스로 진행하고 싶기는 한데... 될려나 모르겠습니다.

함정

원문 출처입니다

우왓, 글바꿔놓고 팽개쳐놓았더니 그새 내용이 엄청나게 늘었다(역쉬 wikipedia).
나중에 update해야 되것습니-_-다. (언제일지 며느리도 모르지만)

SMS Von der Tann 은 독일 제국 해군의 첫 순양전함이었으며, 독일의 첫 터빈 방식 추진 전투함이었다. 함부르크의 블룸&보스에서 지어졌으며, 정찰 함대의 일꾼이었다.

사양
함종: Unique battlecruiser
이름: SMS Von der Tann
출처: Ludwig von der Tann
주문: 1907년 9월 26일
제작사: Blohm and Voss, Hamburg
시작: 1908년 3월 21일
진수: 1909년 3월 20일
취역: 1910년 9월 1일
최후: 1919년 6월 21일 Scapa Flow 에서 자침

기준배수량: 19,370 t (21,350 short tons)
만재배수량: 21,300 t (23,500 short tons)
길이: 171.7 m (563 ft)
폭: 26.6 m (87 ft)
홀수: 8.91 m (29.2 ft) 9.17 m (30.1 ft)
출력: 4 screws, Parsons steam turbines, 43,600 shp (39 MW)
속력: 설계 24.8 knots (46 km/h), 최대 27.75 knots (51 km/h)
항속거리: 4,400 nautical miles (8,100 km) at 14 knots (30 km/h)
승무원: 장교 41명, 882명
무장:
- 8 × 28 cm (11 in) SK L/45 guns (4 × 2)
- 10 × 15 cm (5.9 in) guns
- 16 × 8.8 cm (3.5 in) guns
- 4 × 45 cm (18 in) torpedo tubes
장갑:
- 측면 80 mm (3.1 in) ~ 250 mm (9.8 in)
- 포탑 앞 230 mm (9.1 in)
- 주탑 250 mm (9.8 in)
- 어뢰 벌지 25 mm (0.98 in)

함선

개발

전투함의 설계는 1906년 8월에, "순양함 F"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305mm 와 343mm 구경을 포함한, 몇 가지 전거포함의 방안이 제안되었다. 재정 문제로 덜 비싼 방식이 채택되었다. 나사우(Nassau)급과 같은 280mm 2연장 주포탑으로 결정되었다.

새 전투함에게 주어진 역할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티르피츠(Tirpitz) 제독은 영국의 새 순양전함과 같이, 더 큰 주포, 가벼운 장갑, 빠른 속도를 요구하였으며, 전열의 최일선에서 운용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해군 본부에 살다시피 한 황제는 초기 접촉 후에 전열에 참가하도록 하는 의견 쪽이었고, 그런 이유로 장갑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었다.

1907년 6월 22일, 황제는, 1870년의 대프랑스전쟁에서 싸운 바바리아 장군의 이름으로 명명된, 순양함F의 건조를 승인하였다.

설계

1) 무장

8문의 28cm 주포를 2연장 포탑 4개에 탑재하고 있으며, 포탑은 앞에 하나, 뒤에 하나, 각 측면에 하나씩 위치해 있었다. 모두 660발의 포탄이 165발씩 나뉘어져 4군데의 포탑방에 탑재되었다.

영국제와는 다르게, 10문의 15cm 포도 포상의 축에 탑재하였으며 각각 150발의 HE와 AP탄이 탑재되었다. 또한 16문의 88mm 포도 탑재하고 있었는데, 어뢰정과 구축함 방어용이었다. 포상의 축에 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모두 3200발(문당 200발)의 포탄이 탑재되었다.

당시 관습적으로, 4발의 발사관을 배의 함수, 함미, 양현에 가지고 있었으며, 11발의 어뢰가 탑재되었다.

2) 장갑

전열에서 싸울 계획이었기 때문에, 함의 장갑은 나중에 유틀란트(Jutland)에서 맞짱을 뜨게 되는 영국의 HMS 지치지않는(Indefatigable)급 대비 10%정도의 더 많은 양이 사용되었다.
장갑은 크룹사 제 합금니켈강으로 만들어졌다. 앞부분은 80~120mm, 핵심부는 250mm, 후면은 100mm, 앞부분 사령탑은 250mm, 뒷부분 사령탑은 200mm, 주포탑 전면은 230mm, 측면은 180mm, 지붕은 90mm, 갑판은 25mm, 경사갑판은 50mm 두께로 만들어졌다.

직전에 건조된 장갑순양함 블뤼헤르(Blucher)처럼, 함도 선체에서 4m 떨어져 있는 25mm 두께의 대 어뢰용 방뢰격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소에는 석탄저장고로 사용되었다.

3) 속력

이후에 건조된 동시대의 순양전함들처럼, 함도 최소 24knot 이상의 속력을 가졌는데, 어디에서인가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동안 평균 27knots, 최대 28knot 이상의 속력을 내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속력은 함이 활동하던 시대 내내 건조되었던 노급전함들의 속력과는 급이 다른 수준이었다.

내역

함은 건조 후 몇 번의 장거리 항해를 뛰었다.
1911년 초에는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푸에르토 밀리타(Puerto Militar), 바히아 블랑코(Bahia Blanco)를 방문하고 5월 6일 킬(Kiel)로 귀환하였다.
1911년 5월 8일, 정찰함대의 일원이 되었다.
1911년 6월 함은 조지5세의 즉위식 참석을 위하여 스피트헤드(Spithead)에 다녀왔다.

1차 세계대전 개전시, 함은 정찰부대, Konteradmiral Tapken의 제3함대의 기함이었다.

1914년 함은 헬골란트 해역(Helgoland Bight)에서 벌어진 전투 후, 영국 순양전함을 찾기 위한, 실패한 정찰에 참여하였다.
1914년 11월 2~3일에 걸쳐 벌어진 야머스(Yarmouth)와 12월 15~16일에 걸쳐 벌어진 스카브로(Scarborough)의 습격에 참여하였다.

1915년 배는 북해와 발틱해에서 작전에 참여하였다.
1915년 8월 10일 함은 발틱해 동쪽에 있던 우토(Uto)의 요새섬에 포격을 하였다. 함은 장갑순양함 바얀(Bayan)과 5척의 러시아 구축함과 접촉하였다.

1916년 초 함은 야머스(Yarmouth)와 로위스토프트(Lowestoft)의 포격에 참여하였다.

1916년 5월 31일 ~ 6월 1일간에 있었던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함은 HMS 인디패티거블에게 5발의 주포탄을 먹였는데, 그 중의 한 발이 상대방의 탄약고를 유폭시켜 폭침하게 만들었다. 반대급부로 함은 HMS 바함(Barham)에게 15인치 주포탄 1발, HMS 타이거(Tiger)에게 13.4인치 주포탄 2발, HMS 리벤지(Revenge)에게 15인치 주포탄 1발을 얻어맞았다. 전투 행로 동안 4군데의 주포탑 모두가 상대방 포격으로 인하여 박살이 나던가 혹은 기계적인 문제로 시달렸으며 2군데의 주포탑은 전투종료 이전에 회복이 가능하였다. 인원 피해는 11명의 사망자와 35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전투 후 함은 건선거에서 수리를 받은 후 북해에서 있었던 몇 번의 실패한 습격에 참여하였다.

1918년 11월 24일 대해함대의 남은 일원으로서 항복하였고, 스카파 플로(Scafa Flow)로 끌려갔다. 1919년 6월 21일 자침하였고, 몇 가지 어려움 끝에 1930년 건져져서 로시드(Rosyth)에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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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HMS 인디패티거블 급 대비 부지런히 일하다 간 것 같다는 일꾼 이미지가 들어
막연히 좋게 생각되는 전투함입니다.

인물

Ludwig Samson Arthur Freiherr von und zu der Tann-Rathsamhausen (June 18, 1815 - April 26, 1881) 는 바바리아의 장군이었다.

인물

어렸을때

워털루 전투가 있던 날, 다름슈타트에서 태어났으며, 바바리아, 알사스와 라인지역에 뿌리를 둔, 본 데르 탄의 오래된 가족의 후예였고, 바바리아 임금의 허가 아래 1868년 그의 어머니의 이름(그녀는 알사스의 귀족 Freiherr von Rathsamhausen 의 딸이었다)을 아버지의 이름에 붙이게 되었다. 바바리아의 2번째 임금 루드비히 1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후원자였으며, 그 이름 또한 받았으며, 웰링턴 공작의 영예로운 이름인 Arthur가 덧붙여졌다. (열라길다-_-)

어렸을 때부터 주의 깊은 교육을 받고 1827년 바바리아 법정에서 수행원이 되는 것으로, 훌륭한 미래가 예약되게 되었다. 1833년 포병대에 입대하였고, 몇 년 후 참모본부에 배속되었다. Radetzky 휘하에서 이태리에서 오스트리아 군의 기동작전에 참가하였고, 모험가의 정신으로 튀니지아 개척자들을 상대로 한 프랑스 군의 알제리에서의 탐험작전에도 참전하였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

돌아온 후, 후일 막시밀리안 왕이 되는 바바리아 왕자 막시밀리안 조셉과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가 되었다. 1848년 소령으로 승진하였고, 덴마크와 독일연합 사이에 벌어진 슐레스비히의 첫 전쟁에서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경기병대의 대장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첫 작전에서 그는 프러시아 왕으로부터 Red Eagle 훈장을 수여받았고, 군주는 그에게 막스 조셉의 군사 훈장을 수여받았고, 중령으로 승진하였다. 1849년에는 바바리아 대표단의 참모장으로서 전선에서 활동하였고 티볼리의 선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 이후 헝가리 전쟁에서 하이나우의 사령부를 방문하였고, 이후 Idstedt 작전에서 윌리센스의 참모장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활동하였다.

독오전쟁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전쟁 위협이 왔을 때, 그는 바바리아로 소환되었다. 이 위기는 '올무츠의 항복'으로 끝났고, 그는 1866년까지는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1851년에는 대령으로, 1855년에는 소장으로, 1861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이 기간의 초반 그는 왕의 보좌관이지 충실한 동료였다. 1866년의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전쟁에서 그는 남부 독일 분견대의 지휘관인 바바리아의 왕자 칼 테오도르의 참모장이었다. 거의 불가능한 결과를 요구하는 작전계획은 그에게 과도한 공격을 가하게 하는 압박이 되었지만, 어차피 준비도 부실하고 효율도 부족한 군대와, 이 전쟁에 대하여 극도로 사기가 낮았던 일부 군인들을 가지고서야, 남부 독일군의 실패는 해 보기도 전에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독불전쟁

이후에도 임금의 호의를 계속 받았고 1869년에는 기병대장으로 승진하였으나, 1866년의 실패의 쓰디씀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색이 바래지는 42살이 되었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1869년 그는 바바리아 1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군을 이끌고 1870~1871년에 벌어진 독프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독일군에서 으뜸 중 하나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의 용맹은 워쓰와 세당 전투에서 돋보였다. 가을에 루아르의 독립된 사령관으로 전속되어, d'Aurelle de Paladines 에 대항하는 작전을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기록될만한 성공을 거두어, 오를레앙의 항복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이후 Coulmiers 마을에서 숫적으로 많은 프랑스군과 교전 끝에 밀려났다. 이후 증원을 받고, Mecklenburg-Schwerin 대공의 아래에서 오를레앙 근처에서 몇 건의 성공적인 교전을 벌였다.

전쟁이후

바바리아 1군의 사령관으로 재임명되었고, 1881년 메라노에서 죽을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는 바바리아 군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프러시아 임금에게서 1급 철십자 훈장과 블루맥스 훈장을 받았다. 1878년 독일 황제는 프러시아 보병 연대의 명예 대령 자리와, 별장을 내리고, 스트라스부르그의 새 요새에 그의 이름을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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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말해서 좋은 집 자식으로 태어나 잘 살면서 천수를 누린 사람입니다.

2009/01/02 18:13 2009/01/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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