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는 국대 커리어가 이래서는 후대에 까일텐데...

2014/07/14 23:45 2014/07/1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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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런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4/07/09 23:45 2014/07/0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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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는 은퇴했는데 에브라는 잘 뛰고 있구나...

2014/07/05 23:45 2014/07/0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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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차이가 났지만 저렇게 해보고 져야 안 까이죠

2014/07/01 23:45 2014/07/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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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 좀 보다가 자기전에 오늘 경기는 무엇이 있던가 하고 시간표를 보니
헐 새벽1시에 독일 vs 포르투갈이네...
나름 큰경기가 괜찮은 시간일세?

...하여 출근을 무릎쓰고 보고 있는데,
독일의 실력을 언급하기 전에 포르투갈 연속 자폭중이군요. (맥이 빠진)
그렇긴 하지만 독일의 냉정한 경기력은 유구무언입니다.

......호날두만 안됐네요.
2014/06/17 02:28 2014/06/1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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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럽 정복

Interest/news 2011/09/29 21:12 집쥔
이번 금융위기때 독일에서 가결해야 한다
그리스 살리고 유럽연합이 안깨지려면 독일의 의지가 필요하다...
...는 둥의 늬우스를 보니,

...세계대전의 실패 65년 이후
결국은 돈으로 유럽에 깃발을 꼽아버렸군요.
오호라.
2011/09/29 21:12 2011/09/2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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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서프라이즈를 보는데,
그라프제펠린이 인간이 띄운 가장 큰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허허허)
머 대략 막연히 그런 이유로 은근히 로망이 있는 물건일 겁니다 아마.

비행선의 과학기술사를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이라든가 프로파간다적 성격 등,
뭔기 인문학적인 내용이 주가 된 책이라서 기대와는 어긋나서 그런지
보기에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이야기할 거리도 막연한 듯. (비행선 = 독일 뭐 이정도?)

(시대로 보아) 마티의 나치 시리즈 중 하나 독서 끗.
2010/10/05 20:27 2010/10/0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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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Book/Gossip 2010/09/08 23:52 집쥔
예전부터 정가 3만6천냥짜리 푸르트벵글러 평전을 바구니에 담아놓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요 출판사 책들 50% 땡처리 event가 떠서 일단 물었죠.
그맘때쯤 물려온 게 '기억:제3제국의중심에서',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등...
에... 그러고 보니 다 그맘때 그동네 이야기더군요.

'레니 리펜슈탈'까지 마저 집어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괜시리 느껴지곤 한답니-_-다.
...에라이.
2010/09/08 23:52 2010/09/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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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34위전

Sports/WorldCup 2010/07/11 23:45 집쥔
부담되어 후반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깨어 보니 벌써 4골 들어가 있었-_-음.
약간 김빠진다는 생각을 봐서 그런지 김빠지는 경기이기는 했는데,
의외로 공방...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임이었을 텐데 아깝더군-_-요.

졌어도 우루과이 4강이니 좋겠어요...

일단 문어 win..

일요일 내내 시체짓 했습니-_-다.
...허무해!!! (T.T)
게다가 일찍 자야 하는데 못 자고 있습니-_-다.
2010/07/11 23:45 2010/07/1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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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 잉글랜드 전에서
하이라이트로 독일 선수의 3번째 골을 보았습니다.
...에혀 이게 이동국이와 잘하는 나라 선수의 차이구나... 싶더군요.

이 경기 오심이 크더군요...
4 대 1이 나올 경기가 아니던데... -_-a

멕시코는 털렸고...
2010/06/28 23:45 2010/06/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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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양민학살

Sports/WorldCup 2010/06/14 20:33 집쥔
독일 4:0 호주
...곰가방 좀 잘하지 그랬냐... -_-a

독일은 02년 사우디 8:0 학살도 그렇고, 양민은 학실히 때려잡는듯.
나름대로의 합리성일까나-_-요.

그냥 매일 적당한 때 기록용으로 끄적여볼까봅니-_-다.

네델란드야 명불허전이고 카메룬에는 에투가 있고 덴마크도 역대최강이라던데,
일본 3팬가... -_-a
2010/06/14 20:33 2010/06/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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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 wikipedia를 이런 식으로 글바꿈한 글 정도밖에는 적어볼 여력이 없습니다.
TOEIC 860점을 받아야 하는데 -200점 수준이라서 큰일입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개 페이스로 진행하고 싶기는 한데... 될려나 모르겠습니다.

함정

원문 출처입니다

우왓, 글바꿔놓고 팽개쳐놓았더니 그새 내용이 엄청나게 늘었다(역쉬 wikipedia).
나중에 update해야 되것습니-_-다. (언제일지 며느리도 모르지만)

SMS Von der Tann 은 독일 제국 해군의 첫 순양전함이었으며, 독일의 첫 터빈 방식 추진 전투함이었다. 함부르크의 블룸&보스에서 지어졌으며, 정찰 함대의 일꾼이었다.

사양
함종: Unique battlecruiser
이름: SMS Von der Tann
출처: Ludwig von der Tann
주문: 1907년 9월 26일
제작사: Blohm and Voss, Hamburg
시작: 1908년 3월 21일
진수: 1909년 3월 20일
취역: 1910년 9월 1일
최후: 1919년 6월 21일 Scapa Flow 에서 자침

기준배수량: 19,370 t (21,350 short tons)
만재배수량: 21,300 t (23,500 short tons)
길이: 171.7 m (563 ft)
폭: 26.6 m (87 ft)
홀수: 8.91 m (29.2 ft) 9.17 m (30.1 ft)
출력: 4 screws, Parsons steam turbines, 43,600 shp (39 MW)
속력: 설계 24.8 knots (46 km/h), 최대 27.75 knots (51 km/h)
항속거리: 4,400 nautical miles (8,100 km) at 14 knots (30 km/h)
승무원: 장교 41명, 882명
무장:
- 8 × 28 cm (11 in) SK L/45 guns (4 × 2)
- 10 × 15 cm (5.9 in) guns
- 16 × 8.8 cm (3.5 in) guns
- 4 × 45 cm (18 in) torpedo tubes
장갑:
- 측면 80 mm (3.1 in) ~ 250 mm (9.8 in)
- 포탑 앞 230 mm (9.1 in)
- 주탑 250 mm (9.8 in)
- 어뢰 벌지 25 mm (0.98 in)

함선

개발

전투함의 설계는 1906년 8월에, "순양함 F"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305mm 와 343mm 구경을 포함한, 몇 가지 전거포함의 방안이 제안되었다. 재정 문제로 덜 비싼 방식이 채택되었다. 나사우(Nassau)급과 같은 280mm 2연장 주포탑으로 결정되었다.

새 전투함에게 주어진 역할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티르피츠(Tirpitz) 제독은 영국의 새 순양전함과 같이, 더 큰 주포, 가벼운 장갑, 빠른 속도를 요구하였으며, 전열의 최일선에서 운용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해군 본부에 살다시피 한 황제는 초기 접촉 후에 전열에 참가하도록 하는 의견 쪽이었고, 그런 이유로 장갑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었다.

1907년 6월 22일, 황제는, 1870년의 대프랑스전쟁에서 싸운 바바리아 장군의 이름으로 명명된, 순양함F의 건조를 승인하였다.

설계

1) 무장

8문의 28cm 주포를 2연장 포탑 4개에 탑재하고 있으며, 포탑은 앞에 하나, 뒤에 하나, 각 측면에 하나씩 위치해 있었다. 모두 660발의 포탄이 165발씩 나뉘어져 4군데의 포탑방에 탑재되었다.

영국제와는 다르게, 10문의 15cm 포도 포상의 축에 탑재하였으며 각각 150발의 HE와 AP탄이 탑재되었다. 또한 16문의 88mm 포도 탑재하고 있었는데, 어뢰정과 구축함 방어용이었다. 포상의 축에 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모두 3200발(문당 200발)의 포탄이 탑재되었다.

당시 관습적으로, 4발의 발사관을 배의 함수, 함미, 양현에 가지고 있었으며, 11발의 어뢰가 탑재되었다.

2) 장갑

전열에서 싸울 계획이었기 때문에, 함의 장갑은 나중에 유틀란트(Jutland)에서 맞짱을 뜨게 되는 영국의 HMS 지치지않는(Indefatigable)급 대비 10%정도의 더 많은 양이 사용되었다.
장갑은 크룹사 제 합금니켈강으로 만들어졌다. 앞부분은 80~120mm, 핵심부는 250mm, 후면은 100mm, 앞부분 사령탑은 250mm, 뒷부분 사령탑은 200mm, 주포탑 전면은 230mm, 측면은 180mm, 지붕은 90mm, 갑판은 25mm, 경사갑판은 50mm 두께로 만들어졌다.

직전에 건조된 장갑순양함 블뤼헤르(Blucher)처럼, 함도 선체에서 4m 떨어져 있는 25mm 두께의 대 어뢰용 방뢰격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소에는 석탄저장고로 사용되었다.

3) 속력

이후에 건조된 동시대의 순양전함들처럼, 함도 최소 24knot 이상의 속력을 가졌는데, 어디에서인가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동안 평균 27knots, 최대 28knot 이상의 속력을 내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속력은 함이 활동하던 시대 내내 건조되었던 노급전함들의 속력과는 급이 다른 수준이었다.

내역

함은 건조 후 몇 번의 장거리 항해를 뛰었다.
1911년 초에는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푸에르토 밀리타(Puerto Militar), 바히아 블랑코(Bahia Blanco)를 방문하고 5월 6일 킬(Kiel)로 귀환하였다.
1911년 5월 8일, 정찰함대의 일원이 되었다.
1911년 6월 함은 조지5세의 즉위식 참석을 위하여 스피트헤드(Spithead)에 다녀왔다.

1차 세계대전 개전시, 함은 정찰부대, Konteradmiral Tapken의 제3함대의 기함이었다.

1914년 함은 헬골란트 해역(Helgoland Bight)에서 벌어진 전투 후, 영국 순양전함을 찾기 위한, 실패한 정찰에 참여하였다.
1914년 11월 2~3일에 걸쳐 벌어진 야머스(Yarmouth)와 12월 15~16일에 걸쳐 벌어진 스카브로(Scarborough)의 습격에 참여하였다.

1915년 배는 북해와 발틱해에서 작전에 참여하였다.
1915년 8월 10일 함은 발틱해 동쪽에 있던 우토(Uto)의 요새섬에 포격을 하였다. 함은 장갑순양함 바얀(Bayan)과 5척의 러시아 구축함과 접촉하였다.

1916년 초 함은 야머스(Yarmouth)와 로위스토프트(Lowestoft)의 포격에 참여하였다.

1916년 5월 31일 ~ 6월 1일간에 있었던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함은 HMS 인디패티거블에게 5발의 주포탄을 먹였는데, 그 중의 한 발이 상대방의 탄약고를 유폭시켜 폭침하게 만들었다. 반대급부로 함은 HMS 바함(Barham)에게 15인치 주포탄 1발, HMS 타이거(Tiger)에게 13.4인치 주포탄 2발, HMS 리벤지(Revenge)에게 15인치 주포탄 1발을 얻어맞았다. 전투 행로 동안 4군데의 주포탑 모두가 상대방 포격으로 인하여 박살이 나던가 혹은 기계적인 문제로 시달렸으며 2군데의 주포탑은 전투종료 이전에 회복이 가능하였다. 인원 피해는 11명의 사망자와 35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전투 후 함은 건선거에서 수리를 받은 후 북해에서 있었던 몇 번의 실패한 습격에 참여하였다.

1918년 11월 24일 대해함대의 남은 일원으로서 항복하였고, 스카파 플로(Scafa Flow)로 끌려갔다. 1919년 6월 21일 자침하였고, 몇 가지 어려움 끝에 1930년 건져져서 로시드(Rosyth)에서 해체되었다.

=================================================================================

웬지 HMS 인디패티거블 급 대비 부지런히 일하다 간 것 같다는 일꾼 이미지가 들어
막연히 좋게 생각되는 전투함입니다.

인물

Ludwig Samson Arthur Freiherr von und zu der Tann-Rathsamhausen (June 18, 1815 - April 26, 1881) 는 바바리아의 장군이었다.

인물

어렸을때

워털루 전투가 있던 날, 다름슈타트에서 태어났으며, 바바리아, 알사스와 라인지역에 뿌리를 둔, 본 데르 탄의 오래된 가족의 후예였고, 바바리아 임금의 허가 아래 1868년 그의 어머니의 이름(그녀는 알사스의 귀족 Freiherr von Rathsamhausen 의 딸이었다)을 아버지의 이름에 붙이게 되었다. 바바리아의 2번째 임금 루드비히 1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후원자였으며, 그 이름 또한 받았으며, 웰링턴 공작의 영예로운 이름인 Arthur가 덧붙여졌다. (열라길다-_-)

어렸을 때부터 주의 깊은 교육을 받고 1827년 바바리아 법정에서 수행원이 되는 것으로, 훌륭한 미래가 예약되게 되었다. 1833년 포병대에 입대하였고, 몇 년 후 참모본부에 배속되었다. Radetzky 휘하에서 이태리에서 오스트리아 군의 기동작전에 참가하였고, 모험가의 정신으로 튀니지아 개척자들을 상대로 한 프랑스 군의 알제리에서의 탐험작전에도 참전하였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

돌아온 후, 후일 막시밀리안 왕이 되는 바바리아 왕자 막시밀리안 조셉과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가 되었다. 1848년 소령으로 승진하였고, 덴마크와 독일연합 사이에 벌어진 슐레스비히의 첫 전쟁에서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경기병대의 대장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첫 작전에서 그는 프러시아 왕으로부터 Red Eagle 훈장을 수여받았고, 군주는 그에게 막스 조셉의 군사 훈장을 수여받았고, 중령으로 승진하였다. 1849년에는 바바리아 대표단의 참모장으로서 전선에서 활동하였고 티볼리의 선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 이후 헝가리 전쟁에서 하이나우의 사령부를 방문하였고, 이후 Idstedt 작전에서 윌리센스의 참모장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활동하였다.

독오전쟁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전쟁 위협이 왔을 때, 그는 바바리아로 소환되었다. 이 위기는 '올무츠의 항복'으로 끝났고, 그는 1866년까지는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1851년에는 대령으로, 1855년에는 소장으로, 1861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이 기간의 초반 그는 왕의 보좌관이지 충실한 동료였다. 1866년의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전쟁에서 그는 남부 독일 분견대의 지휘관인 바바리아의 왕자 칼 테오도르의 참모장이었다. 거의 불가능한 결과를 요구하는 작전계획은 그에게 과도한 공격을 가하게 하는 압박이 되었지만, 어차피 준비도 부실하고 효율도 부족한 군대와, 이 전쟁에 대하여 극도로 사기가 낮았던 일부 군인들을 가지고서야, 남부 독일군의 실패는 해 보기도 전에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독불전쟁

이후에도 임금의 호의를 계속 받았고 1869년에는 기병대장으로 승진하였으나, 1866년의 실패의 쓰디씀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색이 바래지는 42살이 되었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1869년 그는 바바리아 1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군을 이끌고 1870~1871년에 벌어진 독프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독일군에서 으뜸 중 하나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의 용맹은 워쓰와 세당 전투에서 돋보였다. 가을에 루아르의 독립된 사령관으로 전속되어, d'Aurelle de Paladines 에 대항하는 작전을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기록될만한 성공을 거두어, 오를레앙의 항복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이후 Coulmiers 마을에서 숫적으로 많은 프랑스군과 교전 끝에 밀려났다. 이후 증원을 받고, Mecklenburg-Schwerin 대공의 아래에서 오를레앙 근처에서 몇 건의 성공적인 교전을 벌였다.

전쟁이후

바바리아 1군의 사령관으로 재임명되었고, 1881년 메라노에서 죽을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는 바바리아 군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프러시아 임금에게서 1급 철십자 훈장과 블루맥스 훈장을 받았다. 1878년 독일 황제는 프러시아 보병 연대의 명예 대령 자리와, 별장을 내리고, 스트라스부르그의 새 요새에 그의 이름을 명명하였다.

=================================================================================

짧게 말해서 좋은 집 자식으로 태어나 잘 살면서 천수를 누린 사람입니다.

2009/01/02 18:13 2009/01/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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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하루 더 쉬어봤더니 몸살에 편두통에 시달리는 중...
남들 다 빠지는 동안 비교적 잘 버틴다고 생각했던 아무개 주식이
남들 다 빠진 다음에 20일만에 25% 급락해버린 원인이 제일이네요.
이제와서 보니까 맥점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게 늘 그러하듯이 지나버린 다음에나 보인달까...
여튼 요새는 스스로에 대해 여러가지로 좌절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불경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보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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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나 지나서 축구 이야기를 쓰는데,
그 스페인도 소심하게 하다가 1:0 승이라.
독일하고 경기를 하면 재미가 없어지네요.

8강에서 징크스를 깼다 싶은 스페인이 우승을 했군요.
스페인은 우승을 이끈 선수들의 나이가 20대 초반이라나,
국가적으로도 부럽고
개인적으로도 부럽네요.

발락의 징크스는 꾸준하군요...
나이도 한국나이로 34이던데...
정말로 우승메달 하나 없이 선수생활 접는건가... -_-a
발라기에게는 안됐지만 한 번 준우승 전문제조기가 되어보는 것도
호사가들 입장에서는 재미있을 듯도.

=================================================================================

여튼, 축구도 끝났으니 잠은 잘 잘수 있는 조건은 하나 갖춰졌네요.
2008/07/02 08:01 2008/07/0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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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터진 상황을 보니까 꽤 흥미진진한 경기였는데, 시청자를 이렇게 우롱하다니...

터키는 보기 전에 기대했던 이상의 저력을 보여주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얄밉게도 할 건 해 주며 경기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갔군요.

내일은 히딩크의 징크스 여부가 문제겠군요.
2008/06/26 08:08 2008/06/2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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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부터 보았는데,
경기 참 재미없게들 한다~ 는 생각을 하게 되어
PIP화면 띄워놓고 다른 일 하고 있던 와중에,
연장전 1분을 남기고 크로아티아의 골이 들어가더니,
아나운서의 7초 남았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기적같이 들어가는 터키의 골.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분위기상 당연하겠지만서도 터키의 승부차기승...
119분 지루하다가 막판 3분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경기였습니다.

보면서, 벼랑끝에 몰려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는
교과서적인 교훈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으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집념에 찬 모습이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립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119분의 무료함, 3분의 드라마로 보상받다

경고누적 출전정지가 1게임인 줄 알았는데 2게임이네요.
독일만 땡잡았네.
2008/06/21 09:33 2008/06/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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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강부터 갑자기

Sports/EuroCup 2008/06/20 08:00 집쥔
공중파로 중계가 넘어간 거시냐...!

아침에 일어나서 여느때처럼 MBC ESPN을 틀어보니 뜬금없이 야구를 하고 있더군요.
조예선 끝나서 하루 쉬나 했더니...
알고보니 KBS에서 중계하고 있더라는... OTL

거의 끄트머리만 봤는데, 독일에게 가볍게 밟혔군요.
첫 경기 끝나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데,
당연하지만 역시나 호날두는 그냥 좀 잘하는 선수지,
마라도나나 지단같이 혼자서 경기를 지배하는 등급의 선수로서는 모자라나봅니다.
- 06년 월드컵때 거칠것 없어보이던 브라질을 뜬금없이 발라버리던 지단 생각이 나는군-_-요.
앞으로 과도한 호들갑은 지양.

독일은,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이러면 8강 턱걸이한 이태리가 또 후덜덜하게 변신해주는 게 아닌지.
- 그래도 델 피에로는 여전히 삽들 것 같지마서도.
2008/06/20 08:00 2008/06/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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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국해군 헬골란트급 전함의 2번함인 동프리슬란드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모습

평범합니다마는, 마지막의 예의 그 사건, 때문에 적어붙여보았습니다.
출처는 (언제나처럼)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거지반 고대로.

일단 접어놓았는데 내용 펼치기

등급 Helgoland class
기준배수량 22,808 tonnes
만재배수량 24,700 tonnes
길이 167.20 m (548.6 ft)
28.50 m (94 ft)
홀수 8.94 m (29.3 ft)
추진 3축, 3기관 수직 3중확장 증기엔진으로 22,000 shp
속력 20.8 knots (38.5 km/h)
항속거리 10 knots (19 km/h) 로 달릴때 5,500 바다마일 (10,190 km)
승무원 장교 42명, 모두 1027명
무장 12 × 12 in (305 mm) 주포,
14 × 150 mm (5.9 in) 포, 14 × 88 mm (3.5 in) 포,
6 × 500 mm (19.7 in) 어뢰발사관


이름은 독일의 네델란드와 북해와 연한 동프리지아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지도일세

1908년 10월 19일 빌헬름스하펜의 제국 공창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909년 9월 30일 진수되었고, 1911년 8월 1일 독일 제국 해군 함정으로 취역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개전 때, 함은 해군 중장 슈미트 제독 예하의 제1전투함대의 기함이었다.
이후 해군 소장 히퍼 제독의 지휘 아래 1914년 12월 16일 스카버러, 하틀플, 휘트비 지역의 기습 작전에 참여하였다.

1916년에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전하였는데, 전투에서 11발의 12인치 주포탄을 발사하였다.
영국 함대와의 전투에서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귀항 도중 6월 1일 수뢰에 접촉하여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하였다.
귀환 후 수리는 빌헬름스하펜에서 1916년 7월 26일 마무리되었다.

종전 후, 4척의 헬골란드급 전함은 모두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로시드 항에서 1920년 4월 7일, "Ship H"로서 미국의 손에 넘어갔고, 해군 대령 헬윅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수리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뉴욕으로 항해하여, 1920년 9월 20일 퇴역한 후, 뉴욕 해군 공창의 건선거에서 전체적인 검사를 받고 1921년 1월 4일 바다로 돌아왔다.

해군력에 대한 공군력의 힘을 보여주려는 빌리 미첼 준장의 실험을 위하여, USS 알라바마를 포함한 다른 퇴역 미군 및 독일 함정들과 함께 시연 및 실험의 목표가 되었다.

첫 날에는 전투기에서 투하된 작은 폭탄의 공습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약간의 침수가 발생하였고, 밤중에 해군 기술자들은 수평유지를 위하여 약간의 역침수를 시켰고, 홀수는 낮아졌다.

둘째 날에는 큰 폭탄(1천파운드)의 공습이 우선 있었다.

공습

이후, 비록 실험이 주의깊게 조절되고 관측되도록 협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첼 준장은 계획을 위반하여 시연을 진행하였고, 결국 버지니아의 랭글리 필드로부터 출격한 핸들리 페이지 0/400s 폭격기에서 떨군 아주 큰 폭탄(2천파운드)의 공습으로 확고한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지근탄의 수중폭발로 인한 충격파로 인하여 일어난 피해로 함의 침수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1921년 7월 21일 버지니아 곶으로부터 97km 떨어진 장소에서 가라앉았다.

침몰

사실 피해복구반이 함내에 대기하여 제때 조치를 취했더라면, 침몰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다.
여튼 이 시연으로 인하여 나름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된 배우로서, 동급함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어버렸달까. 요.
2008/04/30 11:55 2008/04/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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