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급 중 오스트프리스란드 호만 나불댔었는데,
뭔가 거시기해서 동급 나머지 3척에 대한 노가리도 마저 붙여봅니다.
별 거 없습니다.
출처는 언제나 그렇듯이 Wikipedia 영문판입니다.

일단 접어놓았는데 내용 펼치기

1909~10년사이에 진수된, 헬골란드급 전함들은 독일군의 2번째 노급 전함들로, 영국의 드레드노우트 전함에 대한 독일의 응답이었다.
독일의 최초 노급 전함인 나사우급처럼, 독특한 6각방식의 주포 배열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12문의 30.5cm 50구경 주포는 2연장 포탑 6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2쌍은 앞부분, 2쌍은 뒷부분, 나머지는 측면에 위치해 있다.
부포는 14문의 45구경 15cm 부포와, 14문의 45구경 88mm 대공포가 있었다.
장갑은 드레드노트급 대비 약간 우월하였고, 증기터빈 대신 3축 확장 증기기관을 적용하여, 속력은 20.5노트(시속 38km)로 제한되었다.

동급 중 3번함 튀링겐

기본 사양
기준 배수량: 22,808 tonnes
만재 배수량: 24,700 tonnes
길이: 167.20 m (551.76 ft)
폭: 28.50 m (94.05 ft)
홀수: 8.94 m (29.50 ft)
추진: 3 축, 3 cylinder vertical triple-expansion steam engines
추진력: 22,000 shp
속력: 20.8 knots (38.5 km/h)
항속범위: 5,500 nautical miles (10,190 km) at 10 knots (19 km/h)
승무원: 장교 42명, 모두 1027명
장갑: 포탑 300 mm, 측면 300 mm, 갑판 63.5 mm
무장:
12 in (305 mm) 주포를 2연장포탑 6개로, 포탑 배치는 6각형
150 mm (5.9 in) 포 14문
88 mm (3.5 in) 고사포 14문
500 mm (19.7 in) 어뢰 발사관 6문
날틀: 수상비행기를 기중기로 들었다 놓았다 함.

측면

헬골란드(SMS Helgoland)
이름의 유래인 듯
건조: Howaldtswerke, Kiel
시작: 1908년 11월 11일
진수: 1909년 09월 25일
취역: 1911년 08월 23일
최후: 1921년에 해체됨

1차대전 시작 시점에, 함은 제1전함대 소속으로, von Kameke 제독 아래였다. 함은 유틀란트 해전에서 자매함들과 같이 싸웠다. 함은 전투 내내 63발의 주포탄을 쏘았으며, 15인치 포탄 1발을 얻어맞았다.

1차대전 후, 전리품으로 영국으로 넘어갔고, 1921년 Morecambe에서 해체되었다.

해체된 곳 위치

오스트프리스란트(SMS Ostfriesland)

그래도 보고 싶다면 여기로 가면 글이 있답니다욥

튀링겐(SMS Thuringen)
이름의 유래인 듯
건조: AG Weser, Bremen
시작: 1908년 11월 02일
진수: 1911년 07월 01일
취역: 1911년 09월 10일
최후: Scrapped

1차대전 시작 시점에, 함은 제1전함대 소속으로, H Kusel 제독 아래였다. 함은 유틀란트 해전에서 자매함들과 같이 싸웠다. 함은 전투 내내 107발의 주포탄을 쏘았으며, 피탄은 없었다. 함은 6월 1일 02:00경, 영국 장갑순양함 흑태자(HMS Black Prince)의 사냥에 성공하였는데, 흑태자호는 탄약고 유폭으로 침몰하였다.

1차대전 후, 함은 전리품으로 프랑스로 넘어갔다. 1920년 초에 브레스트 항으로 이동하였다. 허나 쉘브르의 해안에서, 독일 승무원은 자침을 시도하였다. 프랑스는 가까스로 쉘부르의 바닷가에 끌어다 놓는데 성공하였다. 1921년 2월, 함은 브레스트 항으로 예인되어왔고, 무장이 제거되었다. 작업이 끝난 후, 함은 다시 캉브레로 예인되어가, 프랑스 해군의 사격 연습 기지로 끌려갔다. 함은 후에 좌초되었고, 선체는 둘로 부서졌다. 잔해는 1923년 3월 고철로 팔렸고, 일부분이 원 위치에서 해체되었다. 선체 자체는 파도에 거의 부서졌으나, 350피트 길이의 선체의 일부는 아직도 30피트 안 되는 깊이의 물 속에 남아있다..

올덴부르그(SMS Oldenburg)
이름이 유래된 곳인듯
건조: Schichau-Werft, Danzig
시작: 1909년 03월 01일
진수: 1910년 06월 30일
취역: 1912년 05월 01일
최후: 1921년에 해체됨

1차대전 시작 시점에, 함은 제1전함대 소속으로, 대전 기간 동안 발틱해와 북해에서 여러 함대작전을 수행하였다. 함은 전투 내내 유틀란트 해전에서 자매함들과 같이 싸웠다. 함은 53발의 주포탄을 쏘았으며, 부포탄 1발을 얻어맞았고, 8명의 전사자와 14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1차대전 후, 전리품으로 일본에 넘어갔다. 함은 1921년 네델란드의 Dordrecht에서 해체되었다.

해체된 곳 위치

일본에 넘어간 배가 뜬금없이 네델란드에서 해체되어버렸나 했는데, 나사우급에 대한 이야기로 때려맞춰보건데, 일본이 필요없다고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가 넘쳐나서 심심하지 않아 참 좋은 세상입니다.

아래 오스트프리스란드 호의 마지막과 관련된 폭격 이야기입니다.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이런저런 구멍이 많았지만, 여튼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대함거포시대를 종식시킨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달까요.
출처는 영문 wikipedia에서 빌리 미첼(Billy Mitchell) 글 중 일부랍니다.

어제쯤 올리려 했다가...
에구구... 대체 몸이 왜이리 쑤시는 건지... (-_-)

펼치기
독일제국해군 헬골란트급 전함의 2번함인 동프리슬란드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모습

평범합니다마는, 마지막의 예의 그 사건, 때문에 적어붙여보았습니다.
출처는 (언제나처럼)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거지반 고대로.

일단 접어놓았는데 내용 펼치기

등급 Helgoland class
기준배수량 22,808 tonnes
만재배수량 24,700 tonnes
길이 167.20 m (548.6 ft)
28.50 m (94 ft)
홀수 8.94 m (29.3 ft)
추진 3축, 3기관 수직 3중확장 증기엔진으로 22,000 shp
속력 20.8 knots (38.5 km/h)
항속거리 10 knots (19 km/h) 로 달릴때 5,500 바다마일 (10,190 km)
승무원 장교 42명, 모두 1027명
무장 12 × 12 in (305 mm) 주포,
14 × 150 mm (5.9 in) 포, 14 × 88 mm (3.5 in) 포,
6 × 500 mm (19.7 in) 어뢰발사관


이름은 독일의 네델란드와 북해와 연한 동프리지아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지도일세

1908년 10월 19일 빌헬름스하펜의 제국 공창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909년 9월 30일 진수되었고, 1911년 8월 1일 독일 제국 해군 함정으로 취역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개전 때, 함은 해군 중장 슈미트 제독 예하의 제1전투함대의 기함이었다.
이후 해군 소장 히퍼 제독의 지휘 아래 1914년 12월 16일 스카버러, 하틀플, 휘트비 지역의 기습 작전에 참여하였다.

1916년에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전하였는데, 전투에서 11발의 12인치 주포탄을 발사하였다.
영국 함대와의 전투에서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귀항 도중 6월 1일 수뢰에 접촉하여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하였다.
귀환 후 수리는 빌헬름스하펜에서 1916년 7월 26일 마무리되었다.

종전 후, 4척의 헬골란드급 전함은 모두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로시드 항에서 1920년 4월 7일, "Ship H"로서 미국의 손에 넘어갔고, 해군 대령 헬윅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수리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뉴욕으로 항해하여, 1920년 9월 20일 퇴역한 후, 뉴욕 해군 공창의 건선거에서 전체적인 검사를 받고 1921년 1월 4일 바다로 돌아왔다.

해군력에 대한 공군력의 힘을 보여주려는 빌리 미첼 준장의 실험을 위하여, USS 알라바마를 포함한 다른 퇴역 미군 및 독일 함정들과 함께 시연 및 실험의 목표가 되었다.

첫 날에는 전투기에서 투하된 작은 폭탄의 공습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약간의 침수가 발생하였고, 밤중에 해군 기술자들은 수평유지를 위하여 약간의 역침수를 시켰고, 홀수는 낮아졌다.

둘째 날에는 큰 폭탄(1천파운드)의 공습이 우선 있었다.

공습

이후, 비록 실험이 주의깊게 조절되고 관측되도록 협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첼 준장은 계획을 위반하여 시연을 진행하였고, 결국 버지니아의 랭글리 필드로부터 출격한 핸들리 페이지 0/400s 폭격기에서 떨군 아주 큰 폭탄(2천파운드)의 공습으로 확고한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지근탄의 수중폭발로 인한 충격파로 인하여 일어난 피해로 함의 침수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1921년 7월 21일 버지니아 곶으로부터 97km 떨어진 장소에서 가라앉았다.

침몰

사실 피해복구반이 함내에 대기하여 제때 조치를 취했더라면, 침몰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다.
여튼 이 시연으로 인하여 나름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된 배우로서, 동급함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어버렸달까. 요.
출처는 wikipedia 영문판입니다.
그런 이유로 wikipedia 한글판에도 올려보려고 합니다.
검색해보니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는 한데, 그래도 (출석체크용으로) 그냥 올려봅니다.
그러려니 하시기 바랍니-_-다. (아님말고)

건조 : 4 May 1940
진수 : 5 October 1944
취역 : 19 November 1944
최후 : Sunk on 29 November 1944 by the submarine Archer-Fish

사양(?)

만재배수량 : 71,890 tons
기준배수량 : 68,059 tons
길이 : 266.1 m (872.9 ft )
수선너비 : 36.9 m
갑판너비 : 40 m
홀수 : 10.8 m
추진 : 12 Kanpon 기름보일러, 증기터빈, 4축, 153,000 hp (114 MW)
속력 : 27 knots (51 km/h)
항해범위 : 27 knots 일때 10,000 nm (50 km/h 일때 18,400 km)
무장 : 127 mm (5' inch) 40구경 16문, 120 mm (4.7 inch) 45구경 12문, 25 mm 60구경 대공포 120문, 28총신 127 mm (5 inch) 대공로켓발사기 20문 등
장갑 : 127 mm (5 inch) 측면, 100 mm (4 inch) 갑판, 79 mm (3.1 inch) 비행갑판 등
탑승인원 : 2,515명
탑재항공기 : 47대 (120대 이상도 가능)

약력(?)

길어서 접었는데 펼치기

시나노는 처음에는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으로 계획되어, 1940년 6월에 요코스카 해군공창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가, 인력과 자원문제로 1941년 여름에 건조대기상태가 되었다가,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일본측에게의)끔찍한 결과 뒤에, 항모로서의 개장이 결정되었다.

개장시 초점은 장갑에 맞춰졌는데, 예를들어, 갑판장갑은 454kg 폭탄에도 견딜 수 있도록 1만7700톤의 강철이 투입되었다. 만재배수량은 7만2000톤이고, 이는 1961년 USS Enterprize가 건조될 때까지 가장 큰 항공모함이었다. 시나노는 지원항모로서 설계되었는데, 대규모의 수리공방과 연료저장고를 갖추어, 다른 항공모함의 전투를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그리하여 자체적으로에 배당된 항공기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배당되지 않은 여분의 항공기를 타 항공모함의 손실에 대비하여 가지고 있는 구조였다. 최고속도는 27knots로, 당시 어떤 미국 잠수함의 속도보다도 빨랐다.

배는 매우 엄중한 보안속에 건조되었다. 높은 담장이 3면으로 쳐져 있었고, 노동자들은 아예 갇혀 살다시피하였다. 배의 이름을 말하는 것 조차도 사형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보안위반이었다. 그 결과, 배는 20세기에 만들어진 대형 전투함 중에서 유일하게 건조중에 촬영한 공식적인 사진이 없다.

이런 조건아래서, 1944년 10월 5일 진수되었고, 1944년 10월 8일 공식적으로 이름이 부여되었으며, 1944년 11월 11일 시험항해를 가졌고, 1944년 11월 19일에 취역하였다.

1944년 11월 28일 배는 추가장비설치를 위하여 3척의 구축함의 호위하에 구레 항으로 출발하였다. 도시노 아베 제독이 2176명의 사관과 선원들을 지휘하였고, 추가로 300명의 일꾼과 40명의 민간고용인이 타고 있었다. 아베 제독은 공중지원이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야간이동을 계획하였는데, 레이테 해전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함의 수리와 선원들을 휴식이 필요하였던 구축함 함장들과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아베는 항공지원 없는 주간이동은 재난일 뿐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해군본부는 시나노에 대한 기대가 커, 기울어져가는 전세를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 기대의 반영으로, 아베는 구레항에 도착하였을 때 해군소장으로 진급하였다. 그러나, 이 배가 출발하여야 할 때가 다 되었지만, 이 배는 아직 방수격벽의 검사도 완벽하지 않았다. 게다가 700명 정도는 실전경험이 있기는 했으나, 승조원들의 피해대응능력은 떨어졌다. 게다가 12기의 보일러 중 4기는 동작하지 않았다. 아베는 이런 것들이 개선될 때까지 출항을 연기하기를 바랐으나, 미군의 본토공습을 두려워하던 지도부는 이를 반려하였다. 비록 8개의 보일러만 돌아가지만, 20knots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고, 아베는 이 정도 속력이면 혼슈 남단에서 사냥감을 찾아 방황하는 미군 잠수함들은 떨쳐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시나노는 바다에서 Joseph F. Enright 함장의 USS Archer-Fish 잠수함에 발견되기 전까지 몇 시간동안만 바다에 떠 있었다. 당연히 일본측이 훨씬 우월한 화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USS Archer Fish는 호위 구축함들을 흩어지게 하기 위한 떡밥이고, 그 뒤에 여러 척의 잠수함이 늑대떼(wolf pack) 작전을 위해 숨어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그는 휘하 구축함 중의 한 척이 잠수함의 공격을 위해 치고 나아가자 도로 불러들였다. 원래 아베는, 배를 구레 항에 안전하게 가져다 놓는 것이 작전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수비적인 편이었는데, 시나노의 주 기관축 중의 하나가 과열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함의 최대 속도가 18knots - 대부분의 미국 잠수함의 속도와 같은 - 로 떨어지게 되자, 더욱 더 수비적이 되었다. 늑대떼 작전에 낚이지 않기 위해, 아베는 지그재그 침로로 함을 전진시켰고, 이러다 그만 배는 잠수함에게 우현을 노출시키게 되었다.

1944년 11월 29일 03시 17분, Archer Fish는 6발의 어뢰를 발사했는데, 그 중 4발의 얕은 침로를 가진 어뢰가 대 어뢰용 bulge와 수선 사이를 뚫고 들어가 배의 앞부분에 격돌하였다. 배는 가라앉기 시작하였고, 06시 경에 동력을 잃고, 11시 경에는 부력을 잃고 침몰하였다. 아베 함장과 그의 두 항해사를 포함하여 대략 1400에서 2500명 정도가 같이 배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쌀국 해군성은 시나노가 출항했을 때에는 존재 자체를 아예 몰랐고, 3번째 야마토급 전함의 존재 정도만 추정하는 정도였다. Archer Fish는 처음에는 순양함을 격침시킨 것으로 인정받다가, 함장의 격침시킨 배의 모양 sketch로부터 2만8000t급 항공모함을 격침한 것으로 전과를 인정받았다. 전후 양측의 기록을 대조해 본 다음에야 쌀국 사람들은 Archer Fish가 7만2000t급 월척을 잡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시나노는 잠수함에게 낚인 역사상 가장 큰 전투함으로 남아있다.

전후 일본에 대한 쌀나라의 해군 기술 임무 분석가들은, 시나노는 심각한 설계상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도, 선체의 대 포탄용 장갑과 수선 아래의 대 어뢰용 벌지 사이의 연결이 형편없이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Archer Fish의 어뢰는 모두 이 연결부위를 따라서 폭발하였다. 게다가, 어뢰의 폭발력은 기관실 중 하나의 H형 들보를 밀어내었는데, 밀려난 들보는 두 기관실 사이의 구멍을 내는 초대형 망치가 되어버렸다. 덧붙여서, 방수격벽의 문제도 한 건 하였는데,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침수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증언에 의하면 접합부의 리벳이 터져버려 침수가 급격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명명(Nomenclature)

다른 일본 전함들과 마찬가지로 시나노는 옛 일본 지명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시나노 지역은 현재 나가노현에 위치해 있었다. 아카기와 카가와 마찬가지로 시나노도 처음 전함에서 항모로 용도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References(참조) 는 wikipedia 영문판을 고대로 번역.


이 집쪼가리 연지 햇수로 8년입니다.
블로그는 3년째군-_-요.
원래 전함과 엔진을 주제로 한 홈피였는데,
세월이 지나는 사이 어느 새 뽀록이 났달까...
근래에는 전혀 글을 못 올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간만에 글 하나 올려봅니-_-다.
(라고 재생을... -_-)

만들 당시만 해도 한글로 구경할만한 곳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마는, 거미줄이 퍼지면서, 강호에 숨어있던 분들이 지식을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읽어보니 내공들이 상당히사더군-_-요.
그래서 그냥 중간에 조용히 잠수를 탔었더랐습니다. (꽤 된듯-_-)
앞으로는... 국을신이나 위키나 뒤지면서 영어공부하는 셈치고 번역이나 해볼까 합니-_-다.

=================================================================================

여튼, 그 와중에 가장 뒤집어졌달까 격하되었달까 하는 전함이 비스마르크 급이었는데,
내공이 출중하신 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1차대전식 터틀백 설계로 대낙각탄에 취약하고,
고속포는 종속이 딸리는 데에다가 비스마르크의 경우는 양각이 낮아서 사거리가 짧다고 하며,
이건 뭐 제대로 싸우면 후드한테도 발리고,
나가토하고는 껌도 안되며,
어디선가는 리슐리웨에게도 밟힌다는 글까지 본 듯...?

머 근데 관심의 동기가 된 전함이기도 하고 하여, 애정은 여전하기 때문에,
약점이 지극히 많은 감상적인 글입니다마는, 무덤을 파 보면...
- 이해를 쪼금 높이기 위해서 이사무님 홈피의 글 2개를 링크걸었습니다.
그림 없으면 심심할까봐

유틀란트때,
화약고 폭침한 메리여왕보다는, 떡실신되었지만 살아는 돌아온
자이들리츠장군(그냥 다 보세요)이 더 좋아보이더라는 취향이라,
저 자이들리츠의 이미지에서,
독일해군의 스타일이라는 게 방어력을 더 중시하고 속사포를 좋아한다고 고정되었는데,
이 스타일이 개인적으로 웬지 멋나보이네요(무덤판다).
여기까지는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고...

처음에야 그럴 의도야 아니었겠지만, 2차대전 독일해군 입장에서라면,
떡실신되더라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전함이 더 좋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견해걸랑요.
물론 전투력을 끝까지 잃지 않는 것이 전함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1차세계대전때와는 달리 독일해군은 전면전용 대양해군이 아니고,
게다가 맞서싸울 나라는 수백년간 바다를 지배해 온 1순위 강자 영국해군.
정석보다는 변칙일 수 밖에 없는게 독일해군의 숙명이 아닌가 싶으며...
구름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에서 1:1 데스매치하는 일은 가능성이 없다시피한 일이고,
- 특히 주 전장이 북대서양인 독일해군에게는 더더욱 어이가 없는 일이죠.
각국의 필요에 충실하게 만드는게 최우선이라고 보았을 때에,
확실하게 살아서 튀는게 독일해군에 적합한 설계라고 봅니다.
물론 보통 무지에 혐의가 더 크게 가기야 하겠습니다마는...
2차대전 독일해군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그냥 사견일 뿐이구-_-만)

설계면에서 구식이라고 얻어맞아도 할말없다고 하지만,
Zeiss광학장비와 Krupp압연강판과 고압보일러와 전기용접기술의 품질은 사실이잖아욥.
어차피 기술의 Base는 같은데,
전차에서도 설계개념은 뒤쳐져도 최상급 소재&제조기술로 상대를 압도했던 독일이,
전함에서도 설계이외의 다른쪽 문제로 후달렸다는 생각은 안드네욥.
전자장비는 대전내내 뒤쳐지긴 했지만... 주간 1:1전함전에는 솔직히 빠져도 되보인다는...
비교가 아스트랄하기는 한데...
4호전차는 비교적 구식설계입니다마는, 실전결과로는 T34하고 비슷하게 싸운 물건이었죠.
차이가 있기야 하겠지만 비스마르크도 저 정도의 위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먼치킨 킹왕짱이라고 한다면 '그거는 솔직히 아닌데~' 라고 하겠지만,
1차대전식이니까 성능도 무조건 구릴거야~ 라고 하는데도 동감 못한다는.
비교적 구식의 비효율적 설계라지만, 그렇게까지 치명적이지는 않았을거라, 요약이 되네요.
반대로 설계'만' 신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물건너옆나라 함들이 과연 더 좋았을까?
역시 차이야 있겠지만, 치하와 제로센을 만든 나라의,
전함장갑강도(개장 야사 참조)가 좋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건 계량적이 아니기는 하지만 근거가 좀 있나-_-)

이러니저러니 하도,
유도폭탄 2발에 녹아버린 파스타나라 전함 로마.
날으는 라이터 어뢰 6발에 녹아버린 뻥글랜드의 불침전함 왕태자님.
호텔일만 하다가 자살공격임무완수도 못하고 녹아버린 물건너옆나라 최강전함 아마도.
- 게다가 3번함은 딸랑 잠수함 어뢰 4발에 녹아버린...
들과 비교해보자면,
까놓고 말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고, 결과(실적)가 가장 중요한 게 세상인데,
실전의 결과를 놓고 비교해보건데,
- 2870발중 400발정도, 14+16인치 714발중 80발정도 피탄, 물론 어뢰도 맞아주고, 자침.
- 자매함도 하다하다 안되서 6톤짜리 특수폭탄 2발에 4발의 지근탄을 얻어맞고야 가버렸음.
충분히 인상깊은 모습을 보이고 사라졌다는 데야 이의가 없겠죠.
사족으로, 후드하고의 전투때는, 상대가 낡은 전함이다, 로또샷이다, 말이 많은데,
(에 근데, 솔직히 전함전이라는게, 로또샷을 노리는 거 아닌가요)
죠지5세임금님과 로드니제독과 싸울 때에는...
밤낮으로 시달린 승조원, unstalble한 함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동력 저하 - 고속이동표적 맞추는게 - 는 여러가지로 치명적이라고 보는데.
묘하게 의도적으로 무시당한달까, 싶은 분위기가 들더라고욥.

그냥 한 번 무덤파는 셈 치고 써 보았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함사에서 비스마르크 빼 놓으면 어디 이야기가 됩니까.
(그것으로 모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7등 먹을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