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오신 분은 카운터 좀 찍어주어여~(-.-)

 

포클랜드 해전(Battle of admiral_graf_spee)

 

   1914년 11월 11일 스트루데(Strudee) 제독 휘하의 순양전함 인빈시블(Invincible)과 인플렉시블(Inflexible)은 수색 목적으로 포클랜드 기지를 떠났으며, 순양전함 프린세스 로열(Princess Royal)이 파나마해협 경비를 위해 카리브해로 급파되었습니다. 코로넬 해전의 결과에 충격을 받은 영국 해군은 순양전함을 동원하여 그라프 스페 제독의 함대를 때려잡을 계획이었습니다.

 

순양전함 프린세스 로열.
기존 인빈시블 급과 비교해 본격적으로 확대설계된, 방어와 속도면에 신경을 쓴 순양전함입니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그라프 스페 제독은 태평양에서 보급을 받고 어정어정대면서 다음 행동을 고려해보다, 마침내 대서양을 지나 본국으로 귀향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함대는 12월 1일 희망봉을 지나 다음 날 석탄을 싣고 가던 드러미르(Drummuir)를 사냥하고 픽토우 섬에서 3일을 쉽니다. 그라프 스페 제독은 포클랜드를 습격하려 하였으나 휘하의 함장들은 이 생각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결국 제독의 의견대로 습격하도록 결정이 납니다.

   코로넬 해전에 참가하지 못한 구식전함 캐노퍼스(Canopus)는 포트 스탠리 항에 경비함으로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12월 7일 그 동안 수색에 나섰던 스트루데 제독이 돌아오자, 포트 스탠리항의 세력은 구식전함 캐노퍼스, 순양전함 인빈시블과 인플렉시블, 장갑순양함 카나번(Carnarvon), 켄트(Kent), 콘월(Cornwall), 경순양함 글래스고(Glasgow), 브리스톨(Bristol) 그리고 무장상선 마케도니아(Macedonia)로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12월 8일 아침 그나이제나우와 뉘른베르그는 포트 스탠리의 무선소와 항구시설을 기습하기 위해 본대와 갈라져 15mile 먼저 앞으로 나섰습니다. 08:30분 그들은 귀환하는 마케도니아의 무선마스트와 연기를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몰랐지만 07:50분 캐노퍼스 마스트의 정찰병이 그들을 발견하여 글래스고를 경유하여 기함인 인빈시블에 통보를 보낸 상태였습니다. 그 때 영국 전함들은 순양전함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함정들이 연료보급을 받고 있는 중이었고, 증기압을 올리는 데에 2시간이 걸리는 상태였습니다. 만약 캐노퍼스가 없었더라면 독일 함대는 완전한 기습을 달성할 터였을 겁니다마는-_- 사태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09:00분 독일 함대는 기함의 삼각마스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항 내의 상황은 모르지만 캐노퍼스가 항에 있다고는 알고 있는 독일 함대는 '아마 구식전함이 아닐까, 그럼 쉽게 도망칠 수 있을 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였습니다. 산으로 가로막혀 상대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지상 감시요원의 도움을 받아 캐노퍼스는 1만3000yard 거리에서 자신의 앞부분 함포를 발사하였습니다. 사거리가 길어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기습을 당한 독일 함대는 퍼뜩 놀랐고, 이어 캐노퍼스는 연습탄을 장전해놓았던 뒷부분 함포도 발사하였는데, 빈 포탄이기는 했지만 바다를 스쳐지나가며 한 발이 그나이제나우의 뒷부분 연통에 명중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독일 척후함들은 도주 침로를 잡았습니다.

 

구식전함 캐노퍼스. 사진 각도때문인지, 생각보다 날렵해보이더-_-라고.

 

   10:00분 경에 남은 모든 함선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독일 함대는 15내지 20mile의 거리가 있기는 하였으나 아직 8시간이나 남은 낮시간에다가 화창한 날씨는 독일측에게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독일측은 이제야 그 삼각마스트가 순양전함이었고, 이미 보급정비를 마친 본 25knot의 순양전함들에 대해 보급정비가 필요한 20knot의 장갑순양함의 대결이라는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라프 스페 제독은 나쁜 날씨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남동침로를 잡고 다른 경순양함들은 전속력으로 알아서 도주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영국 함대는 처음에는 대형을 짜서 추격하였으나 다른 함정들에 비해 순양전함이 처지게 되자, 곧 각자 전속력으로 상대를 추적하도록 하였습니다. 12:47분 1만6500yard 거리에서 순양전함들은 포문을 열었습니다마는, 그리 정확하지는 않았고, 30분 후에야 후의 함정인 라이프찌히에게 조준을 맞출 - 양 현측에 포탄을 떨굴 - 수 있었습니다. 스페 제독은 이제 곧 추격부대에게 잡힐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에게 반전명령을 내렸습니다. 두 장갑순양함들이 상대의 발을 묶는 동안 경순양함들은 각자 능력껏 도망하라는 의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본 스트루데 제독은 인빈시블과 인플렉시블 그리고 카나본은 두 장갑순양함들과 맞서고 나머지들은 흩어지는 경순양함들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순양전함들은 1만4000yard의 거리에서 변침하여 두 장갑순양함들과 평행침로를 취하게 됩니다. 독일 함대는 바람부는 쪽에 위치하여 영국 포수들은 그들 자신이 뿜어내는 연기로 인하여 조준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독일 함대의 사격은 정확하였으나 긴 거리에 따른 화력부족으로 영국 함대에 별로 피해를 주지 못하였습니다. 영국측은 명중은 적은 대신 대구경포 덕에 많은 피해를 입히기는 하였으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자기들이 입힌 피해를 확인하지 못하여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연기 때문에 시야가 방해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트루데 제독은 독일 함대의 함미를 향해 우현으로 날카롭게 회전하였습니다. 기동 중에 영국 함대는 자함의 연기에 뒤덮였고, 그라프 스페 제독은 남쪽으로 돌아 사정거리 밖으로 나갈 기회를 잡았습니다. 영국의 사격 재개에는 45분이 걸렸고 14:50분에야 순양전함들은 좌현측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페 제독은 근거리로 접근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부포화력를 이용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변침 기동을 했는데, 이로 인하여 독일 장갑순양함들을 덮고 있던 연기가 어느 정도 걷히게 되어 영국 측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이 되었습니다. 영국 함대는 정확한 사격을 독일측에 안겼고, 특히 샤른호르스트는 혹독한 피해와 더불어 많은 부상자들은 안게 되었습니다. 50발이 넘는 명중탄을 맞고 샤른호르스트는 굴뚝 3개가 주저앉았고, 화재를 일으키며 기울기 시작하였습니다. 16:04분 샤른호르스트는 좌현으로 갑자기 기울어서 16:17분에는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나이제나우가 아직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생존자를 구할 수 없었던 까닭에 그라프 스페 제독이하 모든 승조원들은 함과 운명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나이제나우는 혼자 지그재그 침로를 취하며 남서쪽으로 열심히 도주하였고, 17:15분에는 인빈시블에게 마지막으로 명중탄을 안겼으나, 그만 포탄이 바닥나 버리고 맙니다. 영국 함대는 그 직후 사격을 멈추고 불타는 그나이제나우에 정선을 명하였고, 그나이제나우의 승조원들은 배수구를 열고 함을 자침시켰습니다. 765명의 승조원 중에서 190명은 구조되었으나 또 그들중의 많은 인원이 부상의 악화로 사망하였습니다.

 

순양전함 인빈시블. 최초의 순양전함급 함정입니다. 방어력이 허약한게 문제랄까.

 

   대형 함정들이 싸우는 동안 소형 함정들도 나름대로 접전을 벌였습니다. 독일 경순양함들은 드레스덴, 뉘른베르크, 라이프찌히 순서대로 도주하였고, 영국측은 글래스고, 콘월, 켄트 순으로 추격을 하여갔습니다. 14:45분 글래스고가 라이프찌히에 대해 포문을 열기 시작하였고, 라이프찌히도 좌현으로 돌며 응사를 하여 글래스고가 헛발하는 동안 2발의 명중탄을 기록하였습니다. 글래스고는 물러나야 했고, 라이프찌히는 원래 도주 침로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독일 함정들은 라이프찌히를 돕는 열심히 내닫고 있었습니다. 글래스고는 다시 라이프찌히에 대해 사격을 시도했는데, 이 때 독일 순양함들은 서로 흩어져서, 드레스덴은 남서쪽으로, 뉘른베르크는 남동쪽으로 침로를 바꾸었습니다. 글래스고는 이번에는 라이프찌히에 타격과 그로 인한 화재를 안겨주었고, 라이프찌히는 속도가 떨어졌습니다. 16:17시에는 콘월이 사정거리 안에 라이프찌히를 잡았고, 켄트는 뉘른베르크를 추적하였습니다. 라이프찌히의 사격은 좋았지만 글래스고를 맞추지는 않았고, 콘월에게는 별로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였습니다. 19:00분 경 라이프찌히의 메인마스트와 두 굴뚝이 주저앉았고 화재가 커졌습니다. 포탄이 떨어지자 라이프찌히는 콘월을 향하여 실패한 어뢰공격을 하였고 승무원들은 배를 포기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글래스고는 라이프찌히를 끝내기 위해 접근하였다가, 두개의 초록 불꽃이 사망 직전의 독일 순양함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사격을 그만두었습니다. 21:20분 라이프찌히는 18명의 생존자를 남기고 전복 침몰하였습니다. 콘월은 18발의 포탄을 얻어맞았으나 부상자는 한 명도 없었고, 글래스고는 처음 2발의 명중탄에 1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한 것 외에는 피해가 없었습니다. 대신 보일러가 손상되어 속력이 떨어져서 도망치는 드레스덴을 추적할 수 없었습니다.

   뉘른베르크는 켄트에 10mile 앞서 있었고, 설계상으로는 더 빨랐습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는 엔진의 분해조립이 필요했고, 켄트의 승조원들은 미친듯이 일해서 자신들의 함선의 최고속도를 넘겨 25knot까지 속도를 내었고, 이를 위해 나무나 합판등등 탈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하여서 함선은 맹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17:00분 경 거리는 1만2000yard까지 좁혀졌고 4.1inch이지만 더 긴 사정거리를 가진 뉘른베르크가 먼저 사격을 개시하였고, 6inch이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사정거리를 가진 켄트는 10분 후에 대응 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거리는 7000yard까지 좁아지고, 양쪽은 몇 발의 명중탄을 서로 기록하였으며, 뉘른베르크는 도주를 포기하고 현측을 드러내게 침로를 변경하였습니다. 17:30분 거리는 3000yard로 줄어들고, 켄트의 대구경포와 두꺼운 장갑이 점점 더 위력을 보이게 됩니다. 1시간이 지나고 악천후가 다가와 뉘른베르크를 보호하려고 할 때, 그만 뉘른베르크의 보일러 2개가 폭발하여, 속력이 떨어지고 맙니다. 켄트는 뉘른베르크를 좀 더 쉽게 요리할 수 있었고, 30분이 더 지나자 뉘른베르크는 저항능력을 잃고, 19:26분 경에 우현으로 기울어지면서 12명의 생존자만 남긴 채 가라앉았습니다. 켄트는 38발이나 얻어맞았으나 단 16명의 부상자만 기록했을 뿐이었습니다.

 

장갑순양함 켄트. 구식이기는 하지만 상대인 뉘른베르크보다 월등한 덩치와 장갑과 화력으로 승자가 되었죠.
어디서 보았다면 으음... 맘모스와 동급-_-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브리스톨과 마케도니아는 독일 함대의 석탄보급선 바덴(Baden)과 산타 이사벨(Santa Isabel)을 가라앉히고, 다른 석탄보급선 자이들리츠(Seydlitz)는 탈출하여 아르헨티나로 빠져나가 억류되게 됩니다.

   스트루데 제독은 본국으로 순양전함들과 귀환하기 전에 도주한 드레스덴을 수색하였습니다마는,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드레스덴을 놓친것과 순양전함들의 탄약을 과도하게 소비했다는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투는 그의 명백한 승리였고, 대체적으로 환영의 분위기였습니다. 어쨌든 그라프 스페 제독의 함대를 큰 피해없이 괴멸시켰고, 후일담이지만 당시 비판받았던 탄약 소비량도 후의 도거뱅크 해전과 유틀란트 해전에 비하면 더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몇 달이 걸린 추적끝에 드레스덴은 태평양에서 영국 순양함들에게 걸렸습니다. 글래스고, 켄트 그리고 무장상선 오라마(Orama)가 3월 13일 마스 어 티에라에서 우연히 드레스덴을 잡았던 것이었습니다. 중립국이었던 칠레 영해에 정박해 있던 드레스덴에 대해 중립을 무시하고 글래스고는 포문을 열었으며, 5분 후에 드레스덴은 큰 피해를 입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항복교섭중에 독일측은 배를 포기하기로 하고, 화약고를 날려버려 배를 자침시켰습니다. 그라프 스페 제독 함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교전중에 드레스덴은 8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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