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피까지 보고 가시려면 여기를~(-.-)

 

5.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출격

 

   이쪽 이야기의 절정부가 될 듯 싶습니다.
앞의 겨울 통상파괴작전에서 괜찮은 수확을 거둔 독일 해군에게, 더 무서운 신무기, '비스마르크'의 출격이 가까워왔습니다.

 

엘베강을 시험수상항주하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비스마르크급의 제원

   어차피 현재 바다를 떠 다니지는 않으나, 무적전함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마는. 그래도, 주섬주섬 주워들은 비스마르크에 대한 평가들을 조금 자세히 풀어 본다면... 함은 '블룸+보스(한국의 KD-1구축함의 토대가 된 독일의 유명한 수출품-_-인 메코급 프리깃의 제작사입니다)' 사에서 건조하여 1939년 2월 14일 일단 진수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진수 모습

 

   참조한 설계의 기본은 1차대전 전에 건조되었던 '바이에른'급(2만8530t, 38cm * 8문)전함이 설계의 기본이 되었다 합니다. 함의 무게에서 장갑이 차지하는 비율은 40%정도(동시대의 보통 전함들은 30%정도)이고, 장갑 재질도 일반강판 대신 전차 제조용으로 쓰이는 압연강판을 사용하였다고 하며, 당시 독일의 야금술은 일급이었기 때문에, 방어력은 장담해도 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대신에 설계상 문제로, 상부갑판이나 포탑의 상면 장갑은 빈약한 편이어서,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포물선을 그리는 포탄이라든지, 폭격기의 급강하공격에는 약점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실전에서는 별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는). 함체의 접합부는 90%가 경량화에 유리한 용접공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뭐, 무슨 의미인지들 아시겠-_-죠). 피해 관리 문제는,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을 많이 부수어-_- 본) 영국군의 전함들보다는 아무래도 열세가 아니었을까 보여집니다(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게 미군과 구일본군과의 해전들이지요).

 

비스마르크의 건조중 모습

 

   방어력에 중점을 두어 그런지, 화력(47구경 38cm * 8문)은 영국의 전함들하고 비교해보면, 배수량에 비해서는 작은 크기의 포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차대전부터 이어지는 방어력 중시의 독일 전통이랄까나요(맞나--). 그 대신 장전시간은 좀 더 빠르다는 반대급부를 얻을 수는 있었습니다마는. 0.8t의 포탄을 35km까지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가졌습니다. 포신 또한 경량화시켜, 무게에 따른 처짐을 줄여 정확도를 높이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당시 독일의 레이더 기술은 열세였기 때문에 - Battle of Britain을 보시면 알 터 - 3만여t급 전함을 25km정도의 거리 (적 전함의 사거리 안쪽-_-) 에서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레이더를 달고 있었습니다. 대신 지금도 고급 카메라의 렌즈에 쓰이는 칼 자이츠 사의 스테레오식 광학 거리 측정기 - 실제 주포 사격시에 쓰이는 - 는 일급의 정확도를 자랑하였지요. 출력은 당시 독일은 고압기관 쪽에서도 일급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12개의 60기압 고압 증기터빈기관으로 (계획상) 13만8천hp의 출력을 내어 3축 구동으로 30.1knot의 최대속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추진부와 조타부, 사람과 비교해 보시라-_-구

 

   좀 이야기가 길었는데(--)... 일단 기본 사양에서 보면, 1:1로 이 전함과 싸워 배겨 날 영국 전함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영국해군에게는 비상사태이지요. 독일 또한 이런 평가를 내려 그런지, 출격시에 비스마르크는 처음으로 영국 수상함에 대해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전함은 1940년 8월 2일 정식 취역했으며, 포술학교장을 역임한 '에른스트 린데만' 대령이 비스마르크의 첫 함장으로 임명됩니다.

 

승조원들을 사열하고 있는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

 

 

라인연습 개시

   비스마르크의 완성을 기해서, 독일 해군은 1941년 3월, '라인연습'이라는 이름의 작전을 세웁니다. '킬(Kiel)'에서 전함 비스마르크와 새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이 출항하고, '브레스트(Brest)'에서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가 출항하여 영국의 호송선단을 때려잡고 다니면, 영국군은 이들 강력한 4척의 수상함에 맞서야 할 것이고, 그를 위하여 선단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U-Boot들이 좀 더 쉽게 통상파괴전을 벌일 수 있다는 복선도 깔고 있는.. 나름대로 독일 해군 최고의 날을 상상할 만한 작전이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샤른호르스트가 기관부를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출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거기에다가, 그나이제나우마저, 4월 6일, 몰래 감시망을 뚫고 빠져나가려다 영국 공군에 걸려서 어뢰를 얻어맞고, 간신히 회항하여 견적을 내보니 스크류 축과 엔진실 2군데의 침수로, 6개월 전투불능이라는 수치가 나왔으니, 이 또한 작전 참가불능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소식을 들은 작전 지휘자 '귄터 뤼첸스' 제독은 작전의 연기를 건의하나, 레더 제독은 가능한 2척만으로 라인연습의 개시를 명합니다. '1941년 6월 22일의 소련침공계획'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바로, 히틀러의 관심이 육군에게 주의가 돌아갈 터이니, 그 전에 한 건 올려야... 하는 의도에서라고 짐작하셨을 겁니다.

 

고텐하펜에서의 출격직전, 프린츠 오이겐쪽에서 본 비스마르크의 모습

 

   일단 두 척만으로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하고 1941년 4월 25일 출격명령이 내려지나, 프린츠 오이겐이 기뢰를 건드려 수리를 위해 얼마간 지체가 된 후에, 5월 18일 02시에 두 척의 수상함은 덴마크의 고텐하펜을 나섭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들어간 두 함정은 5월 21일 밤에 영국군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북대서양으로 진출합니다. 5월 22일, 나르빅에 있던 두 수상함정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영국해군은 '홀랜드' 제독 아래의 순양전함 '후드(Hood)',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 왕위계승 1순위 영국 황태자의 별칭이라든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지 5세의 큰아들이었던, 미국 이혼녀와 눈이 맞아 바람난 그 에드워드 6세인가나)'와 6척의 구축함을 일단 내 보냈으며, 전함 '로드니(Rodney)'와 4척의 구축함에게 덴마크-영국 사이를 경계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영국 해군 함대 사령관 '토베이' 제독 스스로 또 기함 '킹 조지 5세(King Geroge V)'와 항공모함 '빅토리어스(Victories)'와 순양함 4척, 구축함 7척을 끌고 본거지 '스카파 플로(Scafa Flow)'를 나섰고, 그 다음날 순양전함 '리펄스(Repulse)'를 전열에 합류시켰지요.

 

당시 영국의 자랑이었던 순양전함 '아드미랄' 후드. 비스마르크와 비슷한 제원

 

   영국 해군은 본토-아이슬랜드-그린랜드에 걸쳐 초계망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이슬랜드-그린랜드 사이를 초계하던 '웨이크 워커' 제독의 두 척의 중순양함 '노포크(Norfolk)'와 '서포크(Suffolk)'는, 안개가 짙은 악천후 속에서 순찰을 하다가 13km거리에서 갑자기 덜컥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을 만나게 됩니다. 38cm 포탄을 뒤집어 쓰면서 연막을 치고 사정에서 벗어난 두 중순양함은 신형 레이더를 사용하여 뒤를 졸졸 추적하면서 본부에 '비스마르크를 발견했어' 라고(였는지는--) 무전을 때립니다. 비스마르크는 대서양 진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두 영국 중순양함들을 굳이 쫓아가서 아작내지 않고 전진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영국 함대중에서 홀랜드 제독 쪽이 가장 빨리 차단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1번타자로 비스마르크를 상대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습니다. 홀랜드 제독의 두 대형 수상함 중 순양전함 후드는 크기(4만1200t)와 무장제원(15inch * 8문)으로는 비스마르크에 필적할 거함이었으나, 1920년에 건조된, 1936년에 개장공사를 받기는 했지만, 비스마르크에 비하면 구식 수상함이었고.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3만6727t, 14inch * 10문)는 너무 신형이었던 나머지, 조선소의 기사를 태워 아직 작동이 미비한 부분을 손봐야 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주포 사격을 하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막대한 포연-_-이 인상적이라고 하면.

 

 

거인들의 충돌(Clash of Titans - 영문서적들에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오고, 어감이 좋게 들리더라-_-는)

   1941년 5월 23일 0430시, 독일과 영국의 전함들이 접촉을 하게 되었습니다. 0552시에 2만3천m정도의 거리를 두고 영국 함대가 독일 함대에 다가가는 침로에서 먼저 함의 앞 부분의 포문을 열고, 독일 함대는 그냥 진행 방향에서 조금 늦게 응사를 시작했습니다. 초반 영국 함대의 포격은 실루엣을 착각하여 비스마르크 대신 프린츠 오이겐에게 떨어지고, 얼마 후에 목표를 잘못 고른 것을 알게 된 영국 함대는 다시 목표를 수정합니다. 정면을 독일함대에게 향하고 있던 후드는 뒤의 15inch 주포 4문도 쓸 생각으로 20도정도 방향을 꺾는데, 이 때 프린츠 오이겐의 20cm포의 일제사격에 중앙부 탄약고 엘리베이터를 얻어맞아 화재가 난 얼마 후에, 비스마르크의 5번째 일제사격에 탄약고를 명중당하게 되고, 바로 탄약고 유폭을 일으킨 후드는 폭발로 선체가 두 동강이 나며 전투 개시 8분만에 순식간에 바다에 가라앉습니다. 승무원 1419명 중에서 억세게 운 좋은 3명을 빼고는 나머지 인원 모두 함과 운명을 같이 하...였겠죠. 1차 대전 유틀란트 해전때 겪었던 피셔식 순양전함의 허약한 방호력의 망령의 재현이랄까요... 30년대 개장공사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비스마르크의 위력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살아남은 3명이랍니다... oops... 무서운 인터넷-_-

 

   하튼간에, 전투의 주도권은 이제 독일 해군으로 넘어왔습니다. 후드의 잔해를 피해 회전하던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운 나쁘게도 거리를 잡은 독일측의 화망에 들어가 1만6천m정도까지 좁혀지는 동안 여러 발의 명중탄을 맞고 함교의 인원이(함장과 다른 1명만 살아남고) 몰살당하고 크레인과 발전기등이 파괴되고 수선 아래에 구멍이 뚫려버리며 10문의 주포중 3문만 가능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고 연막을 피우며 사력을 다해 도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피해는 비스마르크가 2발을 얻어맞은 - 연료탱크에 한 발을 얻어맞아 연료가 누설되는 - 정도의 피해가 있었고, 프린츠 오이겐은 1발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활동한 신형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웬지 여기서의 활동으로 전함스런-_- 취급을 받는다 싶기도.

 

   1라운드는 이렇게 끝나고, 독일 함대는 남쪽으로 나아갔으며, 프린츠 오이겐은 도중에 비스마르크와 떨어 단독행동에 들어갑니다. 타격을 입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결전을 지켜 본 영국 중순양함 2척은 비스마르크의 뒤를 다시 졸졸 쫓아가기 시작하였고, 비보를 들은 토베이 제독은 호송선단을 호위하고 있던 전함 '리벤지(Revenge)'와 핼리펙스의 전함 '레밀라이즈(Ramillies)'에게 즉각 추격전에 합류할 것을 명하고, 지브롤터 근처의 H부대의 순양전함 '리나운(Renown)', 항공모함 '아크 로열(Ark Royal)', 중순양함 '쉐필드(Sheffield)' 등에게도 북상명령을 내립니다. 5월 24일 2200시경에 비스마르크는 항모 빅토리어스에서 출격한 '새치(Sword Fish)' 뇌격대의 공격을 받게 되나, 투사된 어뢰는 비스마르크의 선체 가장 중앙에 명중하여 타격을 주지는 못하였더랍니다.

 

항공모함 빅토리어스에서 출동 준비중인 '소드피쉬' 뇌격기.
보기에는 시대에 뒤진 구식 복엽기이나,
이전의 타란토 항 공습과,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기종입니다.

특히 DC판 대전략에서, 항모발착가능, 활주로 있기만 하면 발착가능(쌍발기라서),
뇌장폭장가능, 야간공격-_-가능 등의 막강한 능력을 보유한-_-기종이라서 - 그런데 상대편 - 더더욱

 

   5월 25일 0400시경에 추적하던 서머빌 제독의 영국 함대는 U-Boot 작전지역으로 들어간 비스마르크를 지그재그 항적을 그리며 따라가다 놓쳐버립니다. 이를 모르는 뤼첸스 제독은 그 직후에 후드를 수장시킨 비스마르크의 전과를 30분에 걸쳐 무선통신으로 보고하는 엄한 짓을 저지르지만... 그 상대인 영국 또한 다시 파악한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해도에 잘못 기입하여... 하튼 영국 해군은 25일에 비스마르크의 행로를 놓쳐버립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상황

 

 

다시 발견된 비스마르크, 그리고...

   추격 5일째인 5월 26일, 며칠간의 추적 끝에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순양전함 리펄스는 연료 부족으로 회항하고, 나머지 수상함들의 연료가 달랑달랑한 데에다 기상상태도 좋지 않은 상태라서, 영국 해군성은 이제는 추격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1030시 영국 해안 경비대의 '카탈리나 비행정에게서 '북위 49도 33분, 서경 21도 50분에 방향 150도, 시속 20knot로 항진하는 전함 1척 발견'이라는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작전 상황에 의하면 그 지점에서 활동하는 영국 전함은 없었습니다. 비스마르크를 다시 포착한 것이었지요. 발견 장소는 프랑스 해안에서 1270km정도 떨어진, 24시간 내에 독일 공군의 제공권 내에 도달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비행정은 15분 후에 연락이 두절되어 버리지만, 항모 아크 로열에서 출격한 2대의 함재기가 곧 다시 비스마르크를 발견합니다.

 

비스마르크를 다시 발견한 카탈리나 비행정
'시계대신 달력을 보고 작전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한 기종이지만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대전중 해상정찰, 인명구조와 야간기습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력전투기보다는 웬지 이런 보조역할의 기종들이 웬지 더-_-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함이라면 H부대의 순양전함 리나운(3만1천t, 15inch * 6문)이겠지만, 이 정도의 전투력으로 1:1로 덤볐다가는 후드 꼴 나기 따악 알맞기 때문에, 토베이 제독의 주력전함들이 추격하는 동안에, 항모 아크 로열의 뇌격대가 발을 묶어놓을 임무를 띄고 출격했습니다. 1차 공격대는 정면에 수상함을 발견하고 멋지게 뇌격을 때렸는데... 그 함정은 먼저 앞서나간 아군 중순양함 쉐필드였습니다. 쉐필드의 민첩한 회피기동으로 동료를 수장시키는 오명은 피할 수 있었고, 2차 뇌격대는 아예 쉐필드의 상공으로 날아간 다음, 여기서 방향을 고쳐잡아 비스마르크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2차 뇌격대는 제대로 비스마르크를 찾아 뇌격을 하여 2발의 어뢰를 명중시키는데, 그 중 1발이 회피기동중인 비스마르크의 후미를 때려 추진부를 날려버리는... 비스마르크로서는 최악의 결정타를 맞아버립니다. 속도도 떨어지고 함은 10여도 정도 기울어졌으며, 결정적으로 조타기는 회피행동중에 서북방향 - 영국 주력부대가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고정되어버립니다.

 

비스마르크 사냥에 큰 역할을 한 서머빌 제독의 H함대.
앞이 순양전함 리나운, 항모 아크로열입니다.

 

   마지막에 몰렸다는 것을 안 뤼첸스 중장은 "함은 조종 불능이나 최후의 한발까지 싸울 것임. 총통만세!"라는 전문을 본국에 송신하고, 보고를 받은 독일 해군 수뇌부 또한 비스마르크를 구하기 위하여 근처의 모든 U-Boot를 집결시키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하필 근처의 U-Boot들은 이미 어뢰들을 다 써 버려서 집결하는 영국 수상함들을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한 U-Boot는 항모 아크 로열이 360m 앞을 지나가는데도 어뢰가 없어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할 상황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비스마르크의 도주를 일단 저지시킨 영국 해군은 '바이언' 제독 예하의 제4구축함대 5척을 비스마르크를 저지하는 데에 투입하고, 이들은 밤새동안 어뢰 투사를 위해 접근하다 후퇴하다 하면서 비스마르크의 승무원들의 기력을 빼놓았습니다.

 

위의 소드피쉬 뇌격기와 함께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큰 역할을-_- 한 항모 아크로열의... 선회하는 모습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5월 27일 0847시, 노포크와 합류하여 밤새도록 쫓아온 토베이 제독의 함대의 전함 로드니는 2만2천m에서 속력이 크게 떨어진 비스마르크를 향해 포문을 열기 시작하였고 1분 후에 전함 킹 조지 5세 역시 포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비스마르크 또한 초반에는 정확한 응사로 3번째 일제사격은 로드니의 양 현에 떨어지는 (뱀다리 : 탄착을 좁히면 맞는 겁니다) 정확성을 보여 상대를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 동안의 전투로 지친 승무원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영국 전함들의 사격에 09:07시 1번 포탑부터 차례로 침묵해가면서, 09:30시경 모든 주포탑이 침묵하게 됩니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로드니의 6inch부포도 포격에 참여하였고, 북쪽으로 돌아간 노포크도 8inch 주포로 포격에 참여하였습니다. 영국 전함들은 침묵한 비스마르크에게 차례로 명중탄을 작렬시키며 거의 3천6백m의 거리까지 접근하였고, 또한 로드니와 노포크가 1방씩의 어뢰를 비스마르크에 안겼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상부 구조물은 쑥밭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은 아직도 의연히-_- 떠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와 마지막 격전을 벌인 영국 전함 로드니입니당.
16inch포 9문을 모두 함수에 배치한 - 이미지에서는 3번 포탑이 안 보이는-_-군요 - 튀는 구조인데,
기왕 저렇게 설계했다면, 3번포탑이 2번포탑보다 높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하튼, 영국군함사에서 가장 대구경의 화포를 장착한 함정... 은 아니고-_- 주력전함(battleship)이었습니다.

 

   10:15시 경 비스마르크의 모든 함포는 침묵하고, 지휘권을 인수받은 비스마르크의 기관장 '게르하르트 유나크' 소령은 전원 퇴함을 지시하였습니다. 10:23시 경 영국 함대는 연료 부족과 이대로 진행하다가는 독일 공군의 활동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문제 등으로 인하여 포격을 멈춥니다. 며칠에 걸친 추격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도 될 법하였는데, 마침 마지막으로 전투현장에 도착한 중순양함 '도세트셔(Dorsetshire)'가 가지고 있던 우현에 2발, 돌아서 좌현에 1발의 어뢰를 먹인 얼마 후인 10:40시, 드디어 거함은 브레스트를 800km 남겨둔 지점에서 좌현으로 기울어지면서 배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선수를 하늘로 세우면서 선미 쪽부터 서서히 바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몰에 대해서는, 어뢰는 별 영향이 없었으며, 함의 나포를 막기 위해 모든 배수갑문을 열고 혹은 폭탄을 설치하여 자침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일런지-_-는.

 

5월 27일 영국의 전함들에게 포격을 당하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모습

 

   도세트셔는 구축함들과 함께 생존하여 허우적대고 있는 독일 승무원들을 구하기 시작하다, U-Boot가 출몰했다는 경고를 듣고 그냥 스윽-_- 사라져 버렸습니다. 후에 인정머리없는 처사라고 이야기도 듣고는 하는데, 그 진상은 어떠한지는. 하튼 뒤에 나타난 U-Boot는 몇 명의 생존자를 구할 수 있었고, 뤼첸스 제독을 포함한 고급장교단의 대다수와 2400여명의 승무원 가운데 115명을 제외한 모든 승조원들이 한 때 이름을 떨쳤던 신형 전함과 더불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위 승조원 중에 어찌 보면 애석하다고 할 수 있는 희생자로서, 독일 해군사관학교의 해군 생도 40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훈련을 위해 전함에 처음 탑승한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그만 허망하게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하면... 말이 될까-_-나요.

 

전투를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은 영국 중순양함 도세트셔

 

   자세한 전후사정은 모르겠지마는, 겨울 작전의 승기를 이어가려던 독일 해군의 의도는, 신형 전함의 첫 출격에서 이렇게 꺾어지고 맙니다. 전투 행동을 위해서는 호위함이 따라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나요. 그래도, 이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영국군은 대서양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함 -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모두 8척 - 을 동원하였고, 처어칠 또한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결과를 초조히 기다렸으며, 침몰을 보고받은 후에는 "조선술의 masterpiece였으며, 다행히도 우리에게 잡혔다"는 내용의 말로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2차대전 최고의 함은 못 되더라도, 이 인상깊은 추격전으로 그 명성하나는 전함 중에서 가장 높지 않던가 싶습니다. 여담으로, 이 때 가라앉은 비스마르크의 잔해가 1989년 수중 탐사 중에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바닷속에서 놀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추정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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