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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 출격 - 절정의 시간들

 

무장상선들의 활약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으로 해군은 통상파괴작전에 있어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구석진 독일 항구에서 북대서양으로 돌아 나가는 코스 대신에 프랑스의 항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 해서 출격거리를 대폭 단축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당장은, 노르웨이 작전을 앞에서 언급한 대로 많지 않은 함정들 중에서 순양함 3척, 구축함 10척이나 상실한 데에다가 나머지 함선들도 큰 피해를 입었고, 1940년 6월 현재 운용할 수 있는 함정은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4척뿐인 데에다가, 잠수함대 또한 완전히 전력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통상파괴작전의 개시에 문제가 되었는데. 이를 메꾸기 위해 독일 해군이 중점적으로 전력화한 것이 무장상선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반 소형 상선을 통상파괴용 무장상선으로 개장시킨 것으로 이미 1939년 말부터 적지 않은 수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애초 독일 해군은 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었으나, 1940년 봄부터 출항한 무장상선들은 예상외로 쓸모가 있었고, 노르웨이 전에서 많은 전력을 소모한 이후로는 그 의존도가 더더욱 커졌습니다. 무장상선은 기관총과 15cm함포 6~9문, 그리고 어뢰발사관과 기뢰, 경우에 따라서는 정찰용 비행기까지 장비하고 있었으며, 속력보다는 항속거리가 긴 배가 주로 이용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 특징이 없는 배가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짜 국기나 가짜 배 이름, 연통등을 늘였다 줄였다 한다든가, 갑판위에 구조물을 쌓아 실루엣을 바꾼다든가 하는 위장은 기본이었지요. 여객 수송선으로 위장하기 위해 승무원에게 여장을 시키는 사례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 상선사냥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인 무장상선 '아틀란티스'호

 

   이런 무장상선중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이 '아틀란티스(Atlantis)'호였습니다. 아틀란티스호는 1940년 3월 31일 출항하여, 먼저 북대서양에서 10일간 항해한 뒤 아프리카의 남부까지의 항로에서 9월까지 활약했는데, 그 동안 모두 9척, 6만6천t의 격침 전과를 올렸고, 9월 말부터는 호주 부근에서 활약, 1940년까지 13척, 9만4천t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1941년 11월 22일 영국 순양함 '데본셔(Devonshire)'에 걸려 침몰되기까지 총 22척, 14만6백t의 격침전과를 올렸습니다. 그 외에 13만6천t을 격침시킨 '핑귄(Penguin)', 연합군의 위장 순양함 3척과 싸워 이들을 격침시키는 등 8만3천여t의 전과를 올린 '토어(Thor)', 그리고 태평양에서 맹활약하며 8만5천여t을 격침시킨 '오리온(Orion)', 역시 태평양에서 활약한 '코메트(Comet)'등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영국 해군에 대해서는 이들 무장상선이 정규군함보다도 더욱 골치 아픈 존재였는데,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폭격하기가 대단히 곤란해서 격침시키는 데 최소한 1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데에다가, 정규 군함보다 더 큰 손실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1940년 당시 활동중인 무장상선은 달랑 6척이었고,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1940년 가을무렵부터는 정규함정이 본격적으로 통상파괴작전에 합류하게 됩니다.

 

포켓전함 아드미랄 쉐르의 활약

   가장 먼저 본격적인 통상 파괴작전에 나서기로 한 것은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페르(Admiral Hipper)'와 포켓전함 '아드미랄 쉐르(Admiral Sheer)'였습니다. 그러나 히페르는 노르웨이 해전에서 입은 손상이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동력계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쉐르가 우선 출동하게 되었습니다. 10월 27일 출격한 쉐르는 노르웨이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11월 1일에는 북대서양으로 나아갔고, 11월 5일 단독으로 항해중이던 영국상선 '모판(Morpan)'에 공격을 가해 침몰시킨 다음, 같은 날 저녁무렵, 쉐르는 37척으로 편성된 수송선단 HX-84를 발견하였습니다. 쉐르의 '테오도어 크랑케(Theodore Kranke)'함장은 이들 선단이 분산되기 전에 공격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추적할 것을 명령하였는데, 호위함중의 하나인 영국의 무장상선 '저비스 베이'가 쉐르를 발견하고 포문을 열었고, 그와 함께 선단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 퍼졌고 선단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비스 베이는 용감히 싸웠지만, 쉐르의 28cm 함포를 상대한 지 22분만에 200여명의 승무원들과 같이 수장되는 비운을 맞게 되어버립니다. 쉐르는 이어 수송선단에 돌입, 좌충우돌하며 5척 4만7천여t을 격침시키고 3척을 격파하였습니다. 직접적인 전과가 원래 기대하였던 것 보다는 좀 적었지만, 이 사건이 영국 해군에게 준 충격은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쉐르에게 공격받을 당시 HX-84수송선단은 완전히 흩어지고 말았고, 영국 해군은 주요 수송선단에는 딸려보낼 전함이 확보될 때까지 신규 수송선단의 출항을 정지시키는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대 상선사냥에서 큰 전과를 거둔 포켓전함 '아드미랄 쉐르'

 

   쉐르는 남쪽 바다로 진출하여 12월 14일까지 적도 부근에서 다시 2척의 수송선을 격침시켰고, 1월17일에 탱커 1척을 나포하여 물자를 탈취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후 함장인 테오도어 크랑케는 새로운 전법을 생각해 냈는데, 바로 쉐르를 영국 함정처럼 위장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함선 전체를 영국 함정 색처럼 바꾸고 가능한 한 함선의 정측면을 내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3연장 포탑의 포신 중 1기는 포신을 아래로 완전히 숙이게 하고 포신 2개는 위로 올려 영국함대의 2연장 포탑처럼 보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전법은 멋지게 성공하여 1월 20일에 2척을 격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함선들은 무선 경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크랑케 함장은 이번에는 인도양으로 향했다. 2월 초 희망봉을 돌아 2월 20일부터 2일동안 3척을 격침시켰다. 하지만 이 공격으로 쉐르의 정체가 노출되어 그들은 다시 중부 대서양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미 그동안의 활약으로 크랑케 함장에게 기사 철십자상 수여가 통보된 상태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 2척과 순양함 6척을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이 대담한 사냥꾼을 수색하였으나, 쉐르를 잡는데는 실패하였으며, 적도 부근에서 4일간 머문 쉐르는 더이상 '밥'을 찾지 못한 채 귀로에 오르게 된다. 귀로에서도 쉐르는 킹 조지 5세를 비롯한 영국 주력부대의 감시망을 용케 피해 3월 말에 드디어 키일 항으로 귀항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로서 약 5개월에 걸친 가장 성공적인 쉐르의 사냥이 일단락하게 됩니다. 그 동안 쉐르는 전체 16척 9만9050t이라는 대 전과를 올리고, 영국 주력부대를 분산시키는 등의 성과를 올렸던 것이지요.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페르의 활약

   한편, 애초에는 쉐르와 동행할 예정이었던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페르는 예정보다 늦은 11월 13일에 출격했습니다. 악천후로 영국군 정찰기가 정찰활동을 할 수 없는 틈을 타서 덴마크 해협을 돌파, 대서양으로 나아간 히페르는 '밥'을 찾을 수 없자 항로를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돌렸습니다. 12월 24일 히페르는 시에라리온 근처에서 중동으로 향하는 약 20여 척으로 구성된 WS-5A 병력 수송선단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선단에는 '보너벤처(Bonerventure)'를 비롯한 영국 순양함 3척과 항공모함이 있었고, 히페르는 이들 3척의 순양함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한 나절동안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으나 쌍방 모두 이렇다 할 전과를 내지는 못한 채 접촉이 끊어졌고, 히페르는 또 다시 동력계통에 고장이 생기고, 연료도 부족하여 더 이상 행동하지 못하고 12월 27일 프랑스의 브레스트 항으로 귀환하였습니다.

 

대 상선사냥에서 버벅댄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페르'

 

   6주일 후인 1941년 2월 1일 다시 출격을 한 히페르는, 2월 11일 시에라리온 북쪽에서 별다른 호위 없이 19척으로 편성된 SL-64선단을 발견, 그리 큰 반격을 받지 않고 U-Boot들과 협력하여 7척 3만2800t을 격침시켰습니다. 그러나 다른 함정에 비해 항속거리가 짧은 히페르는 더 이상의 활동은 하지 못한 채 2월 14일에 브레스트로 귀환하였고, 해결되지 않는 엔진의 문제와 영국 공군의 공습 때문에 일단 독일로 귀환하였습니다.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활약

   그 다음으로, 노르웨이 작전에서 입은 손상을 수복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12월 27일 독일의 키일 군항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운 없게도 그나이제나우가 노르웨이 해안에서 거센 폭풍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 기지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1942년 1월 23일이 되어서야 다시 출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 편, 독일의 강력한 순양전함들이 출격했다는 보고를 들은 영국의 함대사령관 '도베이'대장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북해와 대서양을 잇는 길목에 순양함 2척을 배치시켰습니다. 1월 23일 도베이 제독은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발트해 입구를 통과했다는 보고를 받고 전함 3척으로 편성된 주력부대를 파견시켰습니다. 1월 28일에는 영국 해군의 전초부대에 속한 순양함 '나이어드(Naiad)'는 독일 순양전함 부대를 발견했고 이를 급히 주력부대에 타진하였으나, 독일 함대는 영국 함대와 일부러 싸워 전력을 소모시킬 이유가 없었겠지요. 독일 순양전함 부대의 사령관인 '귄터 뤼첸스'중장은 영국 함대 주력 함정의 위치를 파악한 뒤 이들을 가까이까지 끌어들이다가, 약 5~6분 후면 서로가 마주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뤼첸스 중장은 갑자기 함대의 방향을 바꾸어 전속력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 함대는 독일 함대를 코 앞에 두고 놓친 꼴이 되었지요. 독일 함대는 이번에는 우회해서 덴마크 해협을 돌파, 2월 4일 밤에 그린란드 부근에서 연료보급을 받고 남하하여 드디어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드디어 본격적인 통상파괴작전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1941년 2월 8일 HX-106선단이 샤른호르스트에 의해 포착되었고, 그나이제나우는 이들을 우회 공격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뤼첸스 제독은 이들 선단을 영국 전함 '래밀라이즈(Ramillies)'가 호위하고 있음을 알고, 즉각 공격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애초부터 대등한 적과는 싸우지 않도록 훈령을 받고 있었고, 15inch 포를 탑재한 전함 래밀라이즈를 대등한 적으로 평가했던 것이지요. 한 편, 래밀라이즈 쪽에서는 샤른호르스트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히페르급 중순양함 1척을 발견했다는 무전을 보냈고, 영국 함대사령관 도베이 제독은 이 보고를 받고 이들이 독일로 귀환하는 쉐르일 것으로 판단, 주력부대에 독일 본국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감시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뤼첸스가 이끄는 함대는 2월 17일 영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항로인 핼리팩스 항로로 진입했습니다. 2월 22일 뤼첸스의 함대는 영국에서 출발한 선단에서 흩어진 7척의 수송선단을 발견하여 공격, 5척 2만5800t을 격침시켰습니다. 영국은 이들 통상파괴부대가 대서양 서쪽에 출현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부근에 영국 함대가 없기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두 순양전함은 2월 26일부터 2일동안 대서양 중앙부에서 보급을 받은 다음 서아프리카로 향했고, 이곳에서 그들은 SL-67선단을 포착하였지만 호위함인 구형전함 '말라야'의 함재기에게 발견되었고, 뤼첸스는 영국의 '적 발견'교신을 청취하자 바로 핼리팩스 항로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대서양 작전을 위해 출격하는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

 

   귀로 중 그들은 다시 상선 1척을 수장시켰고, 그리고는 영국 해군 주력 부대가 지키는 경계선보다 훨씬 남쪽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호위가 없던 선단을 덮쳐서 1941년 3월 15일에 6척, 3월 16일에 10척 합해서 16척 8만2천t을 격침시켰습니다. 이를 연락받은 전함 '킹 조지 5세(King George 5)', '넬슨(Nelson)' 그리고 '로드니(Rodney)'가 급히 추격에 나서기로 했으나, 뤼첸스 제독은 여기서 또 다시 한 번 기지를 발휘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브로울터를 기지로 하는 영국 해군 항공모함 '아크 로열(Ark Royal)'의 함재기들이 자신들을 발견할 때까지 항로를 북쪽으로 잡아 마치 독일로 귀환하는 것처럼 가장을 했고, 영국  해군 정찰기가 '뤼첸스 부대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영국 해군 정찰기가 없어지자 뤼첸스는 항로를 급히 변경해서 브레스트로 향하였고, 3월 21일 저녁무렵 영국 공군 정찰기가 프랑스에서 약 320km떨어진 곳에서 항해중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발견하여 무전보고를 했지만, 이미 두 순양전함들은 독일 공군의 세력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던 상태였습지요. 뤼첸스 부대는 2달에 걸쳐 대 전과를 거두고 3월 22일 오전 무사히 브레스트로 귀환하였습니다. 이들은 영국 해군의 수상함들을 격침시키지는 못하였으나, 모두 22척 11만 5622t의 상선을 격침시키는 대 전과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11월부터 3월에 걸친 겨울동안의 작전은, 독일 대양함대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불만이라면, 독일 해군의 28cm포의 빈약한 화력으로, 15inch포의 영국전함과 본격적으로 맞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진수를 끝내고 이제 곧 작전에 들어갈 신형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호가 투입될 준비를 갖추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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