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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르웨이 작전

 

작전의 배경

 

   앞에서 보셨다시피, 이미 독일 해군은 1차 세계대전때에 영국 해군에게 좁은 통로를 봉쇄당하여, 그들의 대양함대가 전쟁기간 내내 변변한 전투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눌려있어야만 했었던 암울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다시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양을 향하여 열려있는 다른 넓은 정면이 필요하였고, 프랑스와 노르웨이가 그 방법이 될 터이었습니다. '프랑스는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상대이니, 그렇다면 노르웨이가 필요하다...' 는게 해군 수뇌부의 생각이었습니다.

 

작전 참가함정 중 가장 큰 함정인, 순양전함 그나이제나우... 의 함포 모습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당시 독일은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반도에서 질 좋은 철광석과 목재 자원을 수입 - 제 또래 국민학교(초등학교)때 사회 배우신 분들은, '스웨덴'의 '키루나'에서는 질 좋은 '철광석'이 나는데, 여름에는 발트해를 통해 운반하고, 발트해가 어는 겨울에는 '노르웨이'의 '나르빅'에서 북대서양을 통해 수송하더라고 하더라... 는 내용을 배우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마는, 대체 그때 저걸 왜 배웠는지 모르겠군요(--) - 하고 있던 처지였는데, 처음에는 중립국으로 있을 나라들, 무리하게 건드려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국가 통일당'이라는 친 나치 성향의 자그마한 정당의 당수인 크비슬링을 1939년 12월 14일에 만나서, 독일군이 노르웨이의 해-공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고, 철광석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으며, 영국과 소련간의 북방항로 봉쇄에 협력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교환합니다.

   그런데, 1940년 2월 14일, 앞에서 말한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Admiral Graf Spee)'의 보급을 맡고 있다가, 그라프 쉬페의 침몰로 백수 신세가 되어, 영국인 포로들을 싣고 독일로 귀환하던 보급선 '알트마르크(Altmark)'호가 노르웨이 영해 안에서 영국 구축함 '코삭(Cossack)'에게 걸려서, 영국 해군장관 처칠의 "중립국이고 비무장이고 간에 당장 배를 세워서 수색하라"는 명령에 따라 강제로 배를 수색당하여, 탑승하고 있는 포로들을 모조리 내 주어버린 일이 발생합니다. 중립국이라고 두었다가 생긴 이런 영국의 국제법을 위반한 행동에 분노한 히틀러는, 이를 그대로 내 버려 두다가 당하느니 그 전에 우리가 해 먹어 버리자! 하는 생각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출격하는 독일군

 

   2월 21일, 서부전선 제1군단장인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장군은 급히 히틀러에게 호출을 받고 총통 관저로 들어가서, 5시간 내에 노르웨이 침공계획을 작성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노르웨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던 장군은, 자료를 찾아대며 허둥대며 5시간 후에, 독일 해군과 공군의 지원 아래에 노르웨이의 5대 도시인 오슬로, 크리스티안산드, 베르겐, 트론하임, 나르빅에 5개 사단의 육군 병력을 상륙시켜 점령한다는 간단한 계획을 세워 보고하였고, 작전은 4월 2일 시작됩니다.

   4월 8일 오후, 오슬로 쪽으로 독일 해군은 중순양함 '블루헤르(Blucher)'를 기함으로 작전을 개시합니다. 오슬로항 외부의 해안포대는 상륙한 독일군에 의해 곧 점령되었으나, 강력하게 저항하던 노르웨이의 기뢰 부설함 '올라브 트리그바슨'호는 경순양함 '엠덴(Emden)'호에게 피해를 입혔으며, 작은 포경선 한 척도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좁은 피요르드를 통해 오슬로로 들어가는 독일 해군부대는 이번에는 내측 해안포대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중순양함 '블루헤르'가 그만 어뢰 2방을 맞고 승무원과 싣고 간 상륙병력 천여명과 함께 격침되는 - 독일 해군 최초의 대형함 상실이라는군요 - 큰 피해를 당합니다. 이어, 포켓전함 '뤼초우(Lutzow)'가 지휘권을 이어받았으나, 오슬로 항의 상륙에는 실패하고 목표지점에서 20km 떨어진 지점에 부대를 내려놓고 철수합니다. 오슬로는 후에 공수부대의 공습으로 성공을 합니다마는, 노르웨이 국왕은 북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반격에 뒤집어져 버린 중순양함 블루헤르

 

   4월 9일 아침 나르빅 항을 목표로 한 독일 부대는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의 엄호하에 별 어려움 없이 구축함 10척에 나누어 탄 2천명의 병력이 상륙하여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해군 함정 '노르게'호와 '에이즈볼'호 2척은 항복하라는 독일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저항하였으나, 287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순식간에 제압당해버립니다(--).

   덴마크에서 들어온 보고와, 4월 7일 스카라크 해협을 빠져나가는 독일 함대를 발견한 영국 해군은, 이 날 즉시 대기중이던 전함 '로드니(Rodney)', '밸리언트(Valiant)', 순양전함 '리펄스(Repulse)', 순양함 2척 및 구축함 10척으로 편성된 부대를 20:30시 스카파 플로에서 출동시켰으며, 같은 날 밤 22:00시에 순양함 2척과 구축함 15척으로 구성된 제2부대가 로시드 항을 출발하였습니다. 또 나르빅 항에는 기뢰 부설차 파견되었다가 간발의 차이로 독일군의 행동보다 한 수 늦어 버린 순양전함 '리나운(Renown)', 순양함 '버밍햄(Vermingham)'과 구축함 8척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전역의 상황

 

   제1파견부대 소속의 영국해군 구축함 '글로웜(Gloworm)'은 승무원 한 명이 바다에 빠져, 함대에서 빠져 나와 사람 수색을 하고 있었는데, 8일 08:00시 경에 독일 구축함 2척과 만나 포격을 주고 받게 됩니다. 얼마 후 독일 중순양함 '히페르(Hipper)'가 달려와 포격을 개시하자, 글로웜은 연막을 치며 숨는 듯 했더니, 갑자기 연막에서 튀어나와 히페르를 선체로 들이받아, 측면에 40m가 넘는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고 침몰합니다. 이 사고로 히페르는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투불능상태에 빠졌고, 글로웜의 함장 '제랄드 워커'는 전쟁이 끝나고 알려진 이 공적으로 훈장을 추서받습니다. 교전에 대한 교신을 받은 리나운의 함장 훠트워스 중장은 독일 함대를 잡기 위해 남하하려고 했으나, 본국으로부터의 현 위치 유지의 명령을 받고 도로 북상합니다.

 

다구리 당하고 있는 영국 구축함 글로웜

 

   4월 9일 오전 나르빅 원정군의 호송을 마치고 귀환하던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영국 순양전함 리나운과 만나 포격을 나눕니다. 눈발이 날리는 악천후 속에 포격전이 벌어진 지 얼마 후, 그나이제나우에 1발의 명중탄이 사격통제장치에 떨어져 한동안 사격불능상태가 되고, 샤른호르스트가 연막을 치며 북쪽으로 같이 스윽 사라집니다. 리나운은 추격하려 하였으나 2발의 명중탄으로 20knot로 속도가 저하되어 추격을 포기하였습니다.

   같은 날 베르겐에 대해서는 피요르드 속에 독일 순양함이 2척이나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레이튼 제독의 7척의 구축함으로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보류되었으며, 트론하임에 대한 공격도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기 전까지 일단 연기되었습니다. 독일 공군은 영국 함대에 공습을 하여 구축함 1척을 격침시키고 순양함 2척과 전함 로드니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영국 또한 항공모합 '퓨리어스(Furious)'가 탑재 함재기로 독일 해군에게 공습을 가하여, 경순양함 '쾨니히스베르그(Konigsberg)'가 폭탄 3발을 맞고 격침됩니다. 또한 경순양함 '칼스루헤(Kalsruhe)'는 영국 잠수함 '트루엔트(Truent)'의 어뢰를 얻어맞고 크리스티안산드 근처에서 격침당하고, 포켓전함 뤼쪼우도 오슬로에서 귀환하던 중 영국 잠수함 '스피어 피쉬(Spear Fish)'에게 배 뒷부분에 어뢰를 맞았고, 간신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마는, 1년정도 전투불능상태에 빠집니다.

 

영국 잠수함에게 피격당하고 간신히 돌아온 포켓전함 뤼쪼우

 

   나르빅항에는 독일군 구축함 10척이 있었으며, 영국은 나르빅 항내의 독일 구축함을 격침 또는 포획하기로 하고 그 공격을 구축함 중대의 '워부턴 리(Warbuton Lee)' 대령에게 맡겼습니다. '하디(Hardy)', '하복(Havoc)', '헌터(Hunter)', '핫스퍼(Hotspur)' 및 '호스틸(Hostile)' 5대의 구축함을 인솔한 대령은 4월 10일 새벽녘 눈보라가 몰아치는 해상을 뚫고 피요르드로 들어가 나르빅 항내에 도착합니다. 항내에 있는 독일 구축함 5척에게 기습공격을 가하여 최초의 공격에서 하디가 발사한 어뢰가 독일 기함 '빌헬름 헬드캄프(Wilhelim Heldkamp)'에 맞아 함은 침몰하고 독일군 사령관 '본테' 대장이 전사하였고, 다른 구축함 '안톤 슈미트(Anton Schumit)'도 어뢰 2발을 맞고 침몰당했으며, 남은 3척은 포격전에서 압도되었습니다. 항내에는 23척의 각국 상선이 있었는데, 그 중 독일 상선 6척이 이 때 공격을 받고 파괴되었습니다. 이 공격에서 영국의 구축함은 3척만이 항내공격에 투입되고 나머지 핫스퍼와 호스틸 2척은 해안포대와 다른 독일 해군의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재차 공격하여 상선 3척을 더 격침시키자 항내의 독일군은 저항을 그만두었습니다.

 

4월 10일의 1차 나르빅 해전

 

   이때까지는 영국 함대의 피해는 없었는데, 공격을 마치려고 돌아가려고 할 때, 전황이 뒤집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인접한 헬양스 피요르드로부터 독일 구축함 3척이 갑자기 공격을 해온 것입니다. 지독한 안개 속에서 영국 구축함 전대는 단종진으로 나아가 9천m가 되었을 때 포격을 개시하면서 반대편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또 다른 구축함 2척이 안개속에서 스슥 나타났는데, 발랑켄 피요르드에 숨어있던 나머지 (짐작하시다시피) 2척의 독일 구축함이었습니다. 독일 구축함 '틸(Thiel)'이 발사한 함포에 하디는 함교를 얻어맞고 워부턴 리 대령을 비롯한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계속 명중한 포탄은 기관실에 작렬하였습니다. 맹공을 견디다 못한 하디는 대파되어 해안에 좌초되어 버렸으며, 어뢰에 명중된 헌터도 순식간에 침몰하였으며, 크게 손상을 입은 나머지 3척은 간신히 외해로 빠져나갔습니다. 독일 구축함들은 그 동안 입은 피해 때문인지 추격을 멈추었는데, 외해로 나온 영국 구축함 3척은 30분 후에 보급 탄약을 만재한 독일 수송선 '라우 엔펠스'호를 공격하여 폭발 격침시켜 버리는 반전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용감하게 싸운 워부턴 리 중령에게는 훗날 '빅토리아 십자장'이 추서되었다고 합니다.

 

2차 나르빅 해전때 가라앉아 버리는 독일 구축함 '에리히 기제'호

 

   영국 해군은 2차로 '휘트워스' 중장 밑에 전함 '워스파이트(Warspite)'를 주축으로 하여 항공모함 퓨리어스와 구축함 9척으로 함대를 편성하여 4월 13일, 다시 피요르드로 진입하였습니다. 도중에 나타난 U-Boot와 구축함 1척을 간단히 제압하고, 13:30시에 나타난 독일 구축함 5척과 2차 접전을 벌였습니다. 공격할 만한 해안포대를 찾던 워스파이트는 별 문제가 없자 피요르드 안으로 들어오면서 15nch 함포로(--) 독일 구축함들을 상대하였고, 이 해전에서 헬양스 피요르드의 구축함 '헤르만 쿤네'와 잠수함 U-64, 바이스 피요르드의 구축함 '디터 폰 리터' 그리고 톰박크스 피요르드의 6척의 구축함 등, 1차 나르빅 해전에서 살아남었던 8척의 독일 구축함이 모조리 수장되었습니다. 나르빅을 제압한 영국군은 구축함 2척을 경계 목적으로 배치시키고 일단 철수합니다.

 

2차 나르빅 해전때 대 분탕질을 한 영국 전함 '워스파이트'호

 

   노르웨이는 뒤늦게 영국등에게 구원을 청하고, 역시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영국은 지상군을 상륙시켜 독일에 저항하기로 하고, 4월 12일에 출발하여 4월 14일 나르빅 근처의 하스타드 항에 상륙하고, 먼저 중부의 트론하임을 노릴 생각으로 300여명의 예비부대를 상륙시켜 트론하임 근처에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4월 22일 점령을 위해 트론하임 근처의 남소와 안달스에 1만3천 명의 병력을 상륙시켰으나, 강력한 독일 공군의 공습 때문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4월 27일~5월 1일에 걸쳐 철수해 버리고 맙니다. 나르빅 점령을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군은 5월 12일 밤부터 비에르크빅에 상륙을 감행하였고, 5월 28일 프랑스 식민지 부대 2개 대대와 노르웨이군 1개 대대의 공격으로 나르빅의 점령에는 일단 점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독일군이 저지국가들과 프랑스로 맹렬하게 쳐들어가고 있던 때. 당장 본국이 위급한 처지에 빠진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6월 8일까지 나르빅에서 철수를 하게 되고, 이를 위해 항공모함과 순양함 2척, 그리고 구축함 16척이 더 파견됩니다.

 

난바다에서 휘청대고 있는 순양전함 그나이제나우(그냥--)

 

   그에 앞서 독일 해군은 6월 4일 나르빅 공격을 위하여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와 중순양함 히페르와 구축함 4척을 출격시켰습니다. 6월 7일 철수 소식을 입수한 독일 함대는 수송선 탐색에 착수하였다가 다음날 영국의 선단을 발견하고 병원선 '아틀란티스(Atlantis)'를 제외하고 나머지 유조선 1척, 운송선 1척 및 호위 임무를 맡고 있는 트롤선들을 싸악 쓸어버렸습니다. 연료 문제로 히페르와 구축함들은 회항하고 남은 순양전함 두 척만 북상하던 중, 두 척은 16:00시에 철수하는 비행기를 싣고 귀항중이던 영국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와 2척의 구축함을 포착하게 됩니다. 글로리어스의 함재기가 뜨기 전에 두 순양전함은 16:30시 경, 2만5천m에서부터 포격을 시작하며 접근해 갔고, 비행기를 발진시키기 전에 앞 쪽 격납고에 명중탄을 먹여 화재를 일으킵니다. 항모의 무기인 비행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글로리어스는 연속적인 명중탄에 17:20시 경, 모든 승무원을 퇴함 명령이 내려지고,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2척도 침몰하였으며, 해군장병 1474명과 공군장병 41명이 사망하고 39명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그나마 구축함 중 한 척인 '아카스타(Acasta)'가 침몰 전에 샤른호르스트에게 어뢰를 먹여 큰 타격을 입힌게 영국의 유일한 소득이었습니다. 샤른호르스트는 귀환 도중에 영국 공군에게 대형 폭탄 1발을 맞지만 불발에 그친 행운을 얻습니다. 항공모함 글로리어스의 침몰은 2차대전 해전사에서 정규 항공모함이 전함에게 격침된 유일한 사례라고 하더군요.

 

(이 친구가) 다구리당하고 침몰당한 항공모함 글로리어스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노르웨이 작전은 끝이 났습니다. 전투의 피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웨이 해전의 전과 비교(1940년 4월~1940년 6월)

 

독일 해군

연합국 해군

 

침몰

손상

침몰

손상

전    함

 

3

 

 

항    모

 

 

1

 

순 양 함

3

 3

2

6

구 축 함

10

 

9

8

잠 수 함

8

 

6

 

기    타

22

 4

17

2

 

   비록, 3척의 순양함 및 다수의 구축함을 상실하고, 다수의 함정이 큰 피해를 입기는 하였으나, 열세인 세력을 가지고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과 대등하게 싸워 비등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또한, 훗날을 볼 때에 결과적으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노르웨이는 독일의 손에서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었으니, 그 전략적인 면에 있어서는 큰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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